3월은 또 다시 새해를 맞는 기분이다. 1월 1일이 날짜로 맞이하는 새해라면, 설날은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로써 관습적인 새해가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3월은 새로운 출발의 시기가 되면서 또 다시 새해를 맞는 느낌이다.

우선, 3월이면 방학을 끝낸 많은 학생들이 개학을 하고 한 학년씩 올라가게 된다. 또 일부 학생들은 이전의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학교에 입학을 하거나, 첫 직장에 출근을 하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친구, 새로운 동료, 새로운 선생과 학생들을 맞이하게 되니 모든 것이 신선하다. 겨우내 추위로 움츠렸던 몸과 마음도 3월의 따뜻한 기운을 맞아 생동감을 얻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3월은,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새해 같기도 하다.

우리 대학에도 3월이 되며 풋풋한 새내기들이 들어왔다. 과거 우리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와 비교해 보면 요즘 새내기들은 참으로 재기발랄하다. 이미 SNS를 통해 서로의 교류가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새로 만난 친구들과도 어느 틈에 친해져 있었다. 입학 전에 이루어지는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도 조금씩 마음을 터 가고, 2월에 치러지는 입학식에서부터 이미 ‘우리 학과’에 대한 소속감도 분명하다. 교수들과의 만남에서 자기표현도 잘 하고, 나름대로의 소신과 미래의 목표도 뚜렷한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참 예쁘다.

나는 신입생들과의 첫 만남에서 ‘청출어람 하라’는 말을 한다. 물론 평소에 학생들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다. 특히 소위 학문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대학원생들에게는 ‘학문으로써 스승을 뛰어넘을 자신이 없다면, 학문을 포기하라’고까지 한다. 다소 당돌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는 말이 선생인 내 입에서 나오면 학생들은 일단 멈칫 한다. ‘감히’, 또는 ‘내가 어떻게’ 하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일부 학생들은 당황스러워 하기도 한다. 아마 그것이 스승에 대한 불손함이나 불경(不敬)처럼 여겨지나 보다. 그러나 스승을 존경하는 것과 스승을 능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어야만 학문은 발전하고 미래도 발전한다. 제자가 늘 스승의 발밑에 있거나 그 언저리에서 머물고 만다면 학문은 후퇴할 수밖에 없고, 미래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제자는 당연히 스승을 능가해야 하고, 또 스승은 그런 제자를 바라볼 때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스승 역시 자신의 받고 있는 존경과 권위에 합당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할 것이다. 스승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 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당황스러운 말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마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중국 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 중 한 사람인 순자(荀子, BC. 298 ~ BC.238)의 말과 논변을 모은 『순자(荀子)』 「권학(勸學」에서 유래한다. 원문을 잠시 인용하면,



君子曰學不可以已(군자왈 학불가이이) 군자가 말하기를, 학문은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靑取之於藍而靑於藍 (청취지어람이청어람) 푸른색은 쪽풀에서 취했으나 쪽빛보다 푸르고

氷水爲之而寒於水 (빙수위지이한어수) 얼음은 물로 되었으나 물보다 차다.



라고 되어 있다. 순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위의 글에서 그가 말하려는 것은 교육에 의한 인성의 교화이다. 남(藍:남색 염료를 만들어 내는 풀)에서 청색을 뽑아내는 과정과,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은 말하자만 교육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지고 변화한 청색과 얼음이 원래의 것보다 뛰어나니 제자가 스승보다 훌륭하게 변화됨을 일컬음이다.

새 봄을 맞아 새롭게 출발하는 그대들이여! 부디 청출어람하시길 바란다. 그대들이 꽃길만 걷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그대들의 앞길은 꽃길도 있겠지만, 때론 가시밭길, 때론 자갈길이 놓일지도 모른다. 대신 나는 그대들이 지혜롭기를 바란다. 그 어떤 모진 길을 만나더라도, 그 때마다 올바르게 판단하고 처신할 수 있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그대들이 어느 때에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서는, 그대들이 지나온 모든 길이 꽃길이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그대들은 어느 틈에 스승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청출어람 하라!

김상진 한양대 교수, 한국시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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