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땅의 우두머리… '민족의 성지'로 추앙

강화 마니산 참성단

강화 마니산(摩尼山, 469m)은 풍수전문가들 사이에서 기가 가장 센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한남정맥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이다. 기는 대부분 끝에 모인다. 사람의 주먹 끝에 기가 모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남정맥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부터 한강 남쪽을 따라 이어진 산맥이다. 김포 문수산에서 물살 빠른 강화해협을 건너 고려산·혈구산·진강산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 그 마지막에 마니산을 세웠다. 마니산은 『고려사』, 『세종실록지리』, 『태종실록』 등에 마리산(摩利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리는 고어로 머리를 뜻한다. 그러므로 마니산은 땅의 우두머리란 뜻을 담고 있다.

마니산 정상에 오르면 돌로 쌓은 참성단(塹星壇)이 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전한다. 제단의 상부는 사면이 각각 6척6촌(1.98m)인 네모난 모양이다. 그 가운데는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필자가 이 모양에 주목하는 이유는 메소포타미아문명 지역의 지구라트(ziggurat)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규모면에서 차이가 나지만 하늘에 제사 지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평지다. 그러므로 하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높게 쌓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화는 산을 이용하기 때문에 높지 않아도 되었다.

단군은 역사인가 신화인가? 둘 다 맞다. 역사란 문자로 기록된 시대를 말한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은 역사 이전으로 선사시대(先史時代)라고 부른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것이 신화다.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말로 전해진 것이다. 말이 돌고 돌면 신화가 되는 법이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신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든 신화 없는 나라는 없다. 신화가 곧 그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단군신화는 천제(天帝) 환인이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인간세계를 다스리라고 하였다. 환웅은 풍백·우사·운사 등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세웠다. 그리고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 왕검을 낳았다. 단군은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으니 고조선이다. 이에 대해 『환단고기(桓檀古記)』는 단군신화를 역사로 설명하고 있다.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다. 땅이 드넓고 기후가 따뜻하여 많은 백성이 부유하게 살았다. 그 지도자는 환인(桓因)으로 하늘을 숭배하며 다스렸다. 환국의 위치는 지금의 우랄산맥과 알타이산맥, 바이칼호수에 이르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문화는 매우 발전하여 일찍이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었다. 자연만을 이용하던 시대에 토기는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발명품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땅이 융기되더니 광대한 평원이 고원으로 변했고 날씨가 추워졌다. 더 이상 사람 살기가 어려워지자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몽골리안 대이동이다. 그중 일부가 지금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동하여 수메르문명을 일으켰다. 또 일부는 백두산 신단수 아래로 남하하였다. 이들은 천부인 세 가지를 가지고 왔다는데 청동검·청동거울·청동방울로 추측된다. 또한 풍백·우사·운사를 데리고 왔다. 이로 보아 청동기와 농경, 토기문화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백두산 신단수 아래 신시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하였다. 우리가 배달민족인 이유다. 그들은 단을 세워 하늘에 제사 지내고 지도자를 뽑아 환웅(桓雄)이라 불렀다. 이때가 BC 3897년이다. 그러므로 개천의 주인공은 단군이 아니라 환웅이다.

배달국은 제1세 거발환 환웅부터 제18세 건불단 환웅까지 1,565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개천 1565년(BC 2333) 10월 3일 왕검이 오가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을 세웠다. 왕은 단군(檀君)이라 불렀는데 제1세 단군 왕검부터 제47세 단군 고열가를 거쳐 BC 108년 한나라에 멸망할 때까지 2225년 동안 유지되었다.

마니산의 참성대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는 모양도 비슷하고 제천의식을 행하는 기능도 같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문명이 BC 3500년경 발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은 시기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천의식도 단군부터가 아니라 환웅 때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단기 4350년, 환기로는 5914년이다. 그 유구한 세월동안 참성대가 민족의 성지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그것은 마니산의 기가 세고 좋기 때문일 것이다.

형산 정경연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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