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불의에 타협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거지.”

1960년 3월 10일. 수원농고(현 수원농생고)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시위에 나섰다. 대구(2월 28일)와 대전(3월 8일)에 이은 대규모 학생시위로 전교생의 절반가량인 700여 명이 학교에서 수원공설운동장(현 도청 부지)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당시 졸업반으로 시위대를 이끈 송강진(75) 수원농생고 전 총동문회장은 “자유당의 횡포가 도를 넘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조용하던 수원에서 우리학교가 중심이 돼 시위를 벌인 의미 있는 날”이라고 회고했다.

시위를 기획하고 이끌었지만 정작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3·15 부정선거를 닷새 앞둔 10일은 공설운동장에서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연설이 예정돼 있었다. 학교는 학생들의 현장 방문을 막기 위해 하루 전 시험 날짜를 통보했고, 이에 반발한 송 전 회장은 친구들과 뜻을 모아 즉흥적으로 시위를 기획했다. 다음 날 시위 주동자로 찍혀 경찰에 붙잡힌 그는 “너무 맞아서 나중에는 감각이 마비돼 아픈지도 몰랐다. 경찰은 배후가 누구냐고 자꾸 묻는데 내가 대장인데 배후가 어디 있냐고 대들었다”고 말했다.

이날을 기억하기 위해 송 전 회장은 ‘3·10 학생의거 기념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많은 후배들이 기념비를 통해 선배들의 행동에 공감하고,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조금이라도 얻는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송 전 회장은 총동문회장으로 있던 200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학도병들을 기리는 기념비 설립을 추진해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는 “133명에 달하는 선배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상징할 만한 무엇이 필요했다”고 힘줘 말했다.

하지만 3·10 학생의거 기념비 건립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송 전 회장은 “설계도도 나왔고 장소도 정해졌는데 비용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원시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시위는 “수원 근대사의 중요한 장면”이라는 이유에서다.

송 전 회장은 마지막으로 “요즘 역사의식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은데, 기념비는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환순기자/janghs@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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