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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연의 풍수기행] 청와대 불행의 역사… 풍수 탓인가

서울 한양도성 산세와 청와대 터

정경연 2017년 03월 16일 목요일

한양도성의 산세와 청와대 터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의 역사는 2천년이 넘었다. BC 18년 백제 시조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지 올해가 2035년째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1394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이래로만 생각한다. 소위 ‘정도 600년‘ 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옛 이름인 한성이란 말은 본래 큰 성이란 뜻의 백제 도읍 이름이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서 서기 660년까지 678년간 지속된 왕조다. 이중 한성에 도읍이 있었던 기간은 3/4에 해당되는 493년 동안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475년 한성이 함락되고 제21대 개로왕이 사로잡혀 참수를 당하였다. 그러자 문주 태자가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겨 64년 동안 있었다. 제26대 성왕은 다시 도읍을 사비(부여)로 옮겨 122년 동안 존속하였다. 한성백제시대 제13대 근초고왕은 백제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다. 그는 북방으로 세력을 펼치려 하자 도읍이 한강 이남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재위 26년(371) 도읍을 지금의 한양인 한산으로 옮겼다. 그러므로 한양도성의 역사도 1600년이 훨씬 넘는다.

고려시대 한양은 남경으로 개경(중경)과 평양(서경)과 함께 삼경의 하나였다. 도선비기에 의하면 왕이 11월·12월·1월·2월에는 중경에 머물고, 3월·4월·5월·6월에는 남경에 머물고, 7월·8월·9월·10월에는 서경에 머물면 주변 36국이 조공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고려 왕실은 한양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왕들은 정치적 곤란에 처할 때마다 개경지기쇠퇴설과 남경천도론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외적의 침입이나 천재지변, 흉년 등으로 민심이 나빠졌을 때 왕은 그 책임을 개경의 지기가 쇠퇴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돌렸다. 그리고 남경으로 천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며 수습책을 내놓았다.


고려 제15대 숙종은 어린 조카 헌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그해 전국적으로 심한 가뭄과 병충해로 큰 흉년이 들었고 여진족들이 변방을 침략하였다. 그러자 왕위 찬탈에 대한 하늘의 응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숙종은 재위 6년(1101) 김위제의 상소를 받아들여 남경개창도감을 설치하고 남경을 건설하였다. 김위제는 남경을 삼각산(북한산) 남쪽, 목멱산(남산) 북쪽 사이의 평지에 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로보아 지금의 경복궁·광화문·종로 일대로 추정한다. 청와대 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곳은 평지가 아니다.

이후에도 남경천도론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제31대 공민왕이 강력한 개혁정치를 위해 남경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하였다, 제32대 우왕은 왜구의 침입과 복잡한 정치문제를 지력으로 해결하고자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가 5개월 만에 개경으로 돌아갔다. 제33대 공양왕 역시 약화된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한양으로 천도했다가 7개월 만에 되돌아갔다. 이처럼 한양은 이성계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적어도 1600년 동안 도읍지나 주치로서 역할을 해왔다. 그 중심에는 항상 풍수가 있었다.

한양도성은 한북정맥에서 비롯된 땅이다.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서남진한 한북정맥이 백암산·대성산·백운산·운악산·죽엽산·불곡산·도봉산으로 이어져 서울의 태조산인 북한산(836m)을 세웠다. 그리고 중조산인 보현봉(714m)과 형제봉(463m)을 거쳐 소조산인 북악산(342m)을 거쳐 청와대 바로 뒤편에 있는 현무봉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산세는 점차 순해진다. 전기에 비유하자면 북한산은 발전소 격이다. 보현봉은 1차 변전소, 현제봉은 2차 변전소, 북악산은 변압기, 현무봉은 흔히 두꺼비집으로 부르는 분전반이라 할 수 있다. 분전반에서 전등까지 전선이 연결되듯 현무봉에서 경복궁 근정전까지 맥이 연결되었다.

맥은 물을 만나면 멈추어 혈을 맺는다. 홍례문과 근정문 사이에 영제교라 불리는 금천교가 있다. 북한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경회루에 모인 다음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흐른다. 이 때문에 맥은 더 이상 나가지 못한다. 맥이 멈추어 기가 모인 곳이 근정전 자리다. 반면에 청와대는 맥이 멈추지 않고 경복궁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기가 모이지 않고 빠져나간다. 더구나 뒤의 북악산은 바위산으로 험하다. 풍수적으로 좋은 땅은 순한 생기가 모인 곳이다. 조선총독부터 오늘날의 대통령까지 하나같이 말로가 좋지 않았다.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청와대 이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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