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일부 정치에 몸담은 인사, 또 경제적 식견을 가진 인사들이 ‘경제민주화’에 관하여 상당히 신선한 주장을 하고 나왔다. 우리나라는 1945년 일본에서 해방된 이래 71년이 경과하는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나 ‘경제 민주화’에서 발전을 거듭하여 온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 민주주의 면에서는 몇 가지 질곡(桎梏)을 겪기도 하였으나, 꾸준히 발전해 온 것은 누구도 아는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과도한 국민의 정치참여는 정치를 왜곡시키는 일부 현상까지 보인 적이 있다면 내가 잘못된 분석을 하고 있을까. 여하튼 현재의 인터넷 보급상황, 자치제도, 언론기관의 역할 등에 비추어보아 몇 가지 자유민주주의 결점은 보완·시정되어 나가리라 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떤 난국과 혼란 후 개선되어온 점에 비추어 한 ‘정치적 무질서’를 계기로 정당은 쇄신되고 ‘정치질서’는 정상괘도로 복원되리라고 본다. 나는 몇몇 ‘정치인의 가치관’과 ‘고민하는 태도’에 비추어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는 ‘발전적 개혁’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인생이 생후 20여년이 된 후, 개인적·사회적 인격이 형성되어 가듯이 ‘한 국가의 경제체질’은 상당히 장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그 개혁·개선에는 장기간이 소요되는데 그 출발의 계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있고, 상점들은 문을 열고 있고, 길거리의 차들은 굴러다니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어두운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국부에 비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OECD 국가에서 낮은 수준에 속하는 경우가 10여 가지 이상이다. 이 중에는 사회의 국민의식의 개혁에 달려 있는 경우도 있으나, 국가의 정치인·대기업가·고급관료들이 앞장서 개혁하면 수준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것도 있다. 나는 여기서 이들이 구태의연한 가치관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일부 인사들과 경제지식이 있는 인사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동반성장’ ‘공정한 분배’ ‘경제 민주화’를 주창했음에도 괄목할 만한 개혁·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은 정치인·고급관료들이 그것이 현실적이든 잠재적이든 ‘정경유착’이 그 밑에 가로놓여 있다고 본다. 한편 경제논리를 빌리면 ‘불균형 성장통’에 의한 낙수효과(落穗效果)적 정책에 안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의 국민소득이 매우 낮고, 국부가 빈약했던 60년대·70년대에는 이 정책의 필요성은 분명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만 불이 넘었을 때는 ‘공정한 분배’의 기틀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부지부식간에 종전의 정책이 계속되었고, 그것은 대기업들의 ‘생명력’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미시적이고 단기생명력을 가진 정치인들의 노력에 기대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였다. 그것은 몇몇 인사들의 주장이 ‘현실에 맞지 않는 이단적 주장’이라는 다수세력의 논리에 설자리를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이해적 인식이 부족한 국회의원 등 정치인에게는 어째서 우리가 ‘비례적 평등’ ‘사회보장의 수준’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인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경제 민주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개선정책을 수립하여 단계적 실시를 요구한다. 이렇기 때문에 대부분 ‘단기적 생명력’을 갖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에게는 기대난이다. 직업 관료들은 선진국 통계를 주도면밀하게 파악하여 장기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대통령, 국회의원 등이 잘 이해·인식하여 실천에 옮겨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대기업들이 언필칭 주장하는 이윤증대, 수출증대, 기업 확장, 실업자 구제 등의 논리는 백번 옳다. 그리고 그들이 냉엄한 국제시장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점은 나도 바란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에서 보듯이 대기업가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등 정치적·자의적 통제는 또 다른 부작용만 초래한다. 제도를 통한 통제가 필요하다. 어느 나라이든 대부분 정치질서가 유지되어야 기업질서가 유지된다. 대기업이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일수록 그렇다. 정당질서·정치질서가 하루 속히 ‘안정적 질서’를 갖게 되길 바란다. 과거에도 수차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의 혼란기이다. 조속히 정당질서가 바로잡혀 민주주의 질서도 제대로 작동하고, 동시에 경제개혁의 길로 들어서길 바란다.

송희성 전 수원대법대학장,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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