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검찰청사에서 조사를 받던 박 전 대통령이 생선초밥을 먹었는지 유부초밥을 먹었는지를 놓고 언론에서 괜한 궁금증으로 시간을 보낼 때 홍준표는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풀은 바람이 불면 눕는다. 그런데 요즘 검찰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미리 누워버린다” 검찰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의식한 발언이다. 부쩍 홍 지사를 잡아당기는 구호나 기사들이 많아졌다. 단순히 질투나 시기성의 그것보다 경각심에 가깝다. 그에 대한 기사는 또 다음과 같다. “정작 본인은 원하는 대선 출마를 하면서 타 후보를 선거꾼으로까지 폄하하며 도민의 참정권 침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다만 즐길 뿐이다. 친박과는 선을 긋되 박 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그대로 안고 가겠다는 홍 지사의 기막힌 전략은 여기저기서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미 홍 지사는 예상대로 20일 한국당 2차 예비 경선에서 지난 1차에 이어 2위 후보를 상당한 격차로 누르고 보수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당황한 것은 같은 편인 한국당이다. 경선에서 순위와 득표율은 물론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홍 후보의 지지율이 지난 1차 경선의 46%를 넘어 1~2위 간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그의 키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 선언 이후 두 자릿수에 가까운 지지가 몰린 그다. 그래서 이런 지지세 상승에 자신감을 얻은 듯 보인다. 거칠 것이 없고 무서울 것도 없다. 여야 후보들 공히 시시해 보이는 이유다.

그를 쉽사리 보면 안 되는 이유는 많다. 그는 지금 보수의 눈물을 충분히 거둘 손수건과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줄 충분한 양의 ‘사이다’ 마저 비축하고 있다. 죄다 그의 치부만을 들춰내도 그는 오뚝이처럼 금세 바로 선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지면 문재인 후보와 바로 양강으로 갈 것이란 그의 호언이 허투루만 보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라는 보수의 호의적인 염려와 소위 막무가내식 표현인 ‘무대뽀’로 폄하하는 야권의 질투어린 비판에도 그는 이달 끝에 문재인 후보와 양강 체제로 가면서, 뒤엎어야 할 것이라고 장담 하고 있다.

보수에 이런 시원한 사이다가 없던 것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 냈다. 그간은 듣기에도 민망한 얘기들과 보기에도 가슴 졸이는 행동만을 보여온 늙은 보수였다. 도와주는 게 아니고 오히려 진보에서 보낸 ‘간자’ 같은 행동을 밥 먹듯 해댔다. 이 판국에 홍준표는 적절하면서도 스릴 있는 언변으로 실질적인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좌충우돌식이라도 본선 준비에 골몰한 그의 여러 스펙과 얘기들은 제도권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 모두는 이번 대선 구도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탓도 없지 않다. 좌파 2명, 중도 1명, 우파 1명의 구도다. 물론 우파는 홍준표 자신이다.

알다시피 이번 장미 대선은 유권자 수에 맞춰있다. 언제는 안 그렇겠냐만 유독 반전에 반전을 더할 이번 대선에 중요한 유권자층이다. 그에게 몰표를 줄 수도 있는 50후반부터 60 이후의 답답한 가슴들은 지금 그의 한마디에 귀를 향하고 있다. 타이밍마저 기막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했다가 자신 역시 대법원에서 유죄가 나온다면 노 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는 말이 그것이다. ‘경상도 싸나이’.

그를 두고 정치권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발언이라는 해석과 철이 없다는 폄하가 이어져도 그는 하나의 빈틈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전략적인 성격이 짙다. 나락에 빠진 보수들에게 박 전 대통령은 무능했지만 그는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법을 안다. 그래서인지 헌재 재판관에게 조차 “입이 새털처럼 가볍다”고 비판한다. 박 전 대통령을 대구 서문시장에서 끌어내렸지만 그래도 가장 아픈 부분만은 비껴갔다. 진정한 절묘한 수. 프로는 상대를 끌어안고 가까이 둔다는 고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자신의 거친 말이 극우 성향 표심만 얻을 것이라는 얘기는 홍 지사의 계산으로만 보면 거짓말이다. 그는 21일부터 장기 휴가를 냈다. 올인하겠다는 뜻이다. 섬뜩하다. 두고 볼 일이다. 적폐 청산을 앞세워 증오와 복수를 꿈꾸는 진보에게 그는 ‘헛물 켜지 마시라’고 던진다. 누가 알았겠나. 홍 지사와 유사한 미국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줄. 지금 홍준표를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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