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훌쩍 지났다. 당시는 한·일 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이 붉은 바다로 물들기 직전이었고, 기억을 되짚어 보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로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와 민주당 진념 후보가 맞대결을 하던 때였다. 붉은 악마는 아련한 추억이 되고, 경기도지사는 이후 세번째의 임기가 지났지만 이곳의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시대는 변해 내비게이션이 도입돼 길을 물을 필요도 없어졌고, 디지털카메라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이 가능해 코닥(?)필름을 챙길 필요도 없지만…. 아직도 이곳 양평군 단월면은 2002년도 그림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1980년대 초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 듯 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이렇게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는 기업과 주민들의 발목을 35년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의 목소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참여정부도 여러 번 약속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으나 흐지부지 됐다. 박근혜 정부도 수도권정비계획법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규제 완화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건 ‘선(先) 지방 균형 발전, 후(後) 수도권 규제 완화’라는 논리에 밀려서다. 글로벌시대에 걸맞지 않은 논리가 지속되면서 수도권의 발전은 물론 대한민국의 더딘 경제성장을 부추기고 있다. 전 세계가 국경 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이좋게 발전을 도모하는 어처구니 없는 정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에 피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도록 혈관을 조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다리와 팔에 근육을 키워보겠다고 한들 얼마나 건강해지겠는가?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이제는 ‘나 못 살면 너도 못 산다’는 식의 물귀신 작전에서 벗어나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자’는 상생(相生) 전략이 바람직하다. 너도 나도 첨단업종만 선호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입지여건을 활용할 수 있는 산업을 집중 발굴해야 한다. 지방에 비해 우수한 인재와 젊은 인력 확보가 용이한 수도권은 이 곳 상황에 맞는 산업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또 각 지방의 균형 발전을 도모할 묘책을 찾는 데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대선이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중부일보(中部日報)가 대선을 앞두고 수도권 규제를 화두로 내건 것은 이제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유권자들이 대선주자들의 생각을 읽고, 투표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는 글로벌 무한경쟁시대를 맞고 있는 현 상황에서 35년 전 시작된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엄득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