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을 맞았다.

폭풍우가 지나간 느낌이지만 여전히 촛불·태극기 집회가 맞서는 등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폭풍우가 지나가면 세찬 파도가 밀려올 수 있다는 자연의 이치를 기억해야 한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보복과 신냉전시대 도래의 조짐 등 최근의 국제정세, 특히 한반도를 위협하는 전쟁의 먹구름이 심상치 않음은 우리가 우려하는 현실이다.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국난에 처할 때마다 가장 심각했던 위험은 국론 분열이라는 망국병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다.

우려되는 것은 선거가 통합보다는 대결과 분열을 조장하기 쉬운 생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막강한 권력을 승자가 독식하는 현재의 대통령중심제에서는 분열의 정도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는 망국적인 지역·이념·세대·계층간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된 대한민국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통령이 임기초에는 국민들에게 사랑받다가 임기말에는 미움을 받는다.

헌정사 70년 동안 11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 가운데 8명이 비운의 대통령이었고, 3명만이 온전했다.

온전한 그들마저도 그다지 평탄치 않은 말년을 보냈다.

초대 이승만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으로 하야후 망명했다.

내각제하의 윤보선은 5.16쿠데타로 물러났고, 장기집권했던 박정희는 결국 부하의 총탄에 사망했다.

최규하는 말 그대로 임시대통령이었다.

전두환·노태우는 퇴임후 감옥살이를 피하지 못했다.

노무현은 퇴임후 자살했다.

직선 대통령 대부분도 임기말 상황이 좋지 않았다.

김영삼은 임기초 국민들로부터 80%가까운 지지를 받았으나 임기말 6%로 크게 떨어졌다.

김대중 71%에서 24%로, 노무현 60%에서 27%로, 이명박 52%에서 23%로 직선 대통령 대부분이 임기말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중 탄핵으로 파면되는 치욕을 당했다.

국가의 비극이자 국민의 불행이다.

최순실 같은 허접한 여인네가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농단한 사실을 알게 된 국민들은 분노했다.

속속들이 그 실체가 드러나자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서슴없이 말하며 경악했다.

“박근혜를 잘 모르고 찍었다”고 마치 감쪽깥이 속은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탄핵을 당한 대통령은 박 전대통령이 유일하지만 한국 역사에서 대통령들의 불행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의 모든 대통령이 한결같이 국민을 속이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일까?

아니면 우리 국민이 모든 대통령에게 속을 정도로 멍청한 걸까?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우연일리가 없다.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 대통령중심제란 권력구조의 틀이 바뀌지 않는 한 대통령들의 불행이 되풀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마련된 현행 헌법은 군부세력과 3김이 타협한 산물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국가 운영의 기본 규칙이다.

따라서 이 헌법을 지키고 따르는 것이 국민의 도리이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잘 맞지 않는 옷과 같다.

대한민국의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갈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절실히 필요하다.

완벽한 정치제도란 있을 수 없다.

지금의 심각한 문제가 한결같이 임기말에 미움을 받는 대통령에게만 잘못이 있는지...

그들을 계속 뽑아온 국민과 권력구조에도 잘못이 있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그리고 솔직히 인정해 보는 건 어떨까

탄핵선고 결정문 보충설명에서 어느 헌법재판관이 ‘우리의 문제가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제 안에도 있다’고 한 언급을 결코 가벼이 여겨선 안될 것 같다.

이번 대선시기에 맞춰 개헌하는 방안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

내년 지방선거와 연계해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도 불투명한 상태다.

하지만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돼 다양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 형태가 분권형 대통령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우리의 몸에 잘 맞는 옷으로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시기는 빠르면 좋겠지만 웬만하면 20대 국회를 넘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나라의 명운을 책임질 새 대통령을 뽑는 날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번 대통령은 미래를 책임지지 과거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게 아니다’가 아닌 ‘이렇게 하겠다’는 대통령이 요구된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비운(悲運)이 박근혜로 끝나길 간절히 기대한다.

김성훈 북부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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