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 정치권은 적폐의 청산이니, 그리 급하지도 않으며 국민적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헌법 개정이니 등 과거 지향적이고 책임 회피적인 쟁점들로 뉴스를 채워가고 있다. 또한 사드문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북한의 핵실험, 미국의 정권교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질서잡기 등 산적한 국제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나 탄핵과정에서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려는 노력은 없고, 국민들의 갈등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대선 후보들이 속속 발표하는 정책들 중에서 에너지와 관련된 정책을 보고 있자면, 에너지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의아할 정도다. 여기에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문제와 에너지문제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으며, 에너지와 경제는 또한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는 현재는 물론 50년, 100년 후의 미래세대, 단순히 원료 차원을 넘어 먹거리인 산업과 일자리, 여기에 기후변화의 문제까지 포함한 우리와 인류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비전과 대안이 포함되어야 한다.

안전문제를 원인으로 하는 원자력의 폐지,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원인으로 하는 석탄발전의 감축을 공약으로 선정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공약의 실천에 따르는 현실성 있는 대안과 이런 공약의 추진으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도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원자력 발전소 한 기와 같은 규모의 전기를 태양광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소 부지의 수십 배가 넘는 토지가 필요하며, 태양광의 간헐성으로 인해 태양광 발전이 불가능한 동안의 전력공급을 위해 백업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신재생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국가이다. 국토가 작다보니 산림을 훼손하기 전에는 충분한 태양광 발전부지를 확보하기 어렵고, 긴 여름 장마기간 동안 햇빛이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볼 때도 우호적이지 못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물론 서울시 등이 추진하고 있는 가정용 소규모 태양광 발전을 통한 전력생산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지만, 이로 인해 생산되는 전력을 다 모아도 원자력 발전소 하나 감축하기 벅차다. 가정용 전력보다는 중화학,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제조업이 전력의 주된 소비처인 우리나라로서는 신재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현재까지는 신재생에 대한 보조금과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신재생 산업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지만, 보조금을 제외한다면 최근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저유가 상황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 자난 이명박 정권에서 신재생에 대한 투자가 상당히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떤가.

그렇다면 전기요금을 인상해서 신재생이 흑자를 낼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 경우 우리 국민들이 어느 정도의 요금 인상을 수용할 것인가, 산업체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지 않으면서 이윤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저렴한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전원으로 하는 국가의 기업들에 대한 가격경쟁력이 급속히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이 문제라면 사고의 위험성과 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을 통해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는지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볼 필요도 있고, 채찍과 함께 그동안 국가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인정해줘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원이 거의 없다. 모두 수입해야 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원자력 정책이었다.

원자력 발전기의 수명이 우리 헌법의 평균보다 길다. 에너지의 문제를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이 급진적으로 추진되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구호나 선동을 떠나 기후변화 시대의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에너지 구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현실적인 대안은 신재생보다는 중단기적으로 천연가스일 것이다. 원자력과 석탄발전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천연가스로 전환하면서 어떻게 산업경쟁력을 유지할 것인지 그 방법과 시기에 대해 솔직하고 책임 있는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류권홍 원광대 법학과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