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2년간 20억원 들여 역대 대통령 동상 모두 설치
충북도, 형평성 문제-부정적 여론 사이서 결정 미루고 '고심'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서 탄핵 파면된 데 이어 이제는 구속 수감까지 되는 불명예를 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워야 할까.

요즘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가 직면한 최대 고민이다.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는 서슬이 시퍼렇던 5공화국 시절인 1983년 건설됐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해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돼 지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곳에는 여러 볼거리가 있는 데 그중 하나가 전직 대통령을 꼭 닮은 동상이다.

청남대 내 대통령광장에 가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청남대 관리권을 충북도에 넘겨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는 9명의 대통령 동상이 설치돼 있다.

실물 크기의 동상 9개가 일렬로 서있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설치 초기에는 다소 조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는 국·도비 20억원을 들여 2013년부터 2년여간 250㎝ 크기의 대통령 동상들을 새롭게 제작했다.

동상 제작은 서울 광화문의 세종대왕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인 김영원씨가 맡았다.

이렇게 제작된 동상은 청남대 내 '대통령길' 입구에 나란히 세워졌다.

청남대는 전직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전두환(1.5㎞)·노태우(2㎞)·김영삼(1㎞)·김대중(2.5㎞)·노무현(1㎞)·이명박(3.1㎞) 대통령길도 따로 만들었다.

대통령길이 없는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 동상은 역사교육관 앞 양어장 주변에 설치됐다.

청남대관리사무소의 고민은 불명예 퇴진한 박 전 대통령의 동상도 역대 대통령들과 똑같이 설치하느냐는 것이다.

대통령광장 앞 동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제작을 중단했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지만, 2015년 새롭게 선보인 동상 광장은 다르다.

역대 대통령 동상을 모두 세웠으니 형평성을 고려하면 박 전 대통령 동상도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됐지만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파면에 구속 수감까지 되면서 고조된 부정적 여론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동상 건립에 나섰다간 감당 못할 비난의 화살이 청남대관리사무소에 집중될 수 있다. 찬반 세력간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진보진영은 이미 동상 설립을 강행하면 단체행동에 나서겠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상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불명예 퇴진한 대통령을 기리는 것은 예산 낭비이고,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 문제는 충북도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게 아니라 도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공론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남대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 등이 구성되면 동상 제작 관련 협의를 하겠지만 아직 결정된 바가 전혀 없다"며 "박 전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가 이뤄지는 민감한 시기인데 동상 설치를 검토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 아니겠냐"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청남대를 한 번도 찾지 않을 정도로 청남대와 별다른 인연이 없다. 청남대는 이를 이유로 '박근혜 길'은 조성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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