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받는 배에 555m짜리 돛 펼친 꼴

잠실의 풍수와 롯데월드타워

서울 송파구 잠실은 본래 섬이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강북 쪽에 가까웠다. 대동여지도를 비롯하여 옛 지도를 보면 강북 쪽은 강폭이 좁고 강남 쪽은 넓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이전까지는 성동구에 속했다. 잠실 땅은 모래가 퇴적되어 생긴 것이라는 설과 아차산에서 맥이 이어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후자가 맞는 것 같다. 잠실 재건축 당시 땅 파는 것을 보았는데 생토가 나왔기 때문이다. 맥이 이이진 곳은 생토가 나오지만 퇴적된 땅은 주로 자잘·모래·점토가 나온다. 옛날에는 강북 자양동 쪽의 물길을 신천강, 강남 송파구 쪽은 송파강이라 불렀다. 홍수 때는 두 곳 모두 물이 흘렀지만 보통 때는 송파강만 흘렀다. 그러므로 잠실은 지금의 강북 쪽에 붙어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조선시대 이곳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던 잠실(蠶室)이 있었다. 잠실이란 지명이 유래한 이유다. 이곳은 1963년 서울시 행정구역이 확장되기 전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에 속하였다. 조선시대는 도성에서 남한산성으로 가는 지름길에 해당된다. 광희문에서 왕십리·살곶이다리·뚝섬·잠실까지 와서 배를 타고 삼전도에 내린 다음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남한산성은 유사시 왕의 피난처였기 때문에 뱃길이 닿는 이곳을 중요시하였다. 세종 때 삼전도나루가 설치되었다. 길이 열리자 한양에서 판교와 용인을 거쳐 영남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였다. 삼전도를 마전포라고도 하였는데 삼베의 재료인 삼밭(마전)이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송파강은 갈수기 때도 강물이 많아서 나룻배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특히 북한강과 남한강을 따라 한강으로 들어온 장사배들이 정박하는 곳이었다. 자연히 물류의 집산지로 유통이 활발해져 전국 15대 장시가 되었다. 함경도·강원도·충청도·경기도 일대에서 들어온 물산이 이곳에서 도매로 거래되었다. 송파상인들은 이를 다시 한양 도성안의 사상도고(私商都賈)들과 거래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조선후기 경강(한강)변에는 여러 장시가 들어섰지만 송파장이 단연 으뜸이었다. 이러한 역사성으로 인해 오늘날도 잠실은 상업중심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잠실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바뀐 것은 1970년대부터다. 당시 농촌인구의 상경으로 서울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정부는 심각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주택건설촉진법’을 제정하여 새로운 택지조성사업에 나섰다. 강북으로 인구가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강이남 지역을 중점적으로 개발하였다. 이때 개발된 곳이 강남·서초·여의도·잠실이다. 특히 잠실은 1971년 공유수면을 매립하였는데 북쪽 땅을 파서 남쪽 송파강을 매립하였다. 그 바람에 잠실은 강남 쪽에 붙게 되고 북쪽으로는 강폭이 넓어졌다. 행정구역도 성동구에서 송파구로 변경되었다. 지금의 석촌호수는 송파강을 매립할 때 일부 남겨 놓은 것이다.

풍수에서는 잠실 같은 섬 지형을 행주형(行舟形)으로 본다. 배가 한강에 떠서 항해하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홍수가 나면 잠실은 물에 홀로 떠 있는 배처럼 보였다고 한다. 지금의 잠실7동 아시아공원 입구에 부리도 기념비가 있다. 본래는 자양동에서 이어진 땅이다. 그러나 한강물이 불어나면 마치 물에 떠내려 오는 것처럼 보여 부래도(浮來島)라고 부른데서 비롯된 지명이다. 배는 사람과 물자를 싣고 무역을 한다. 때문에 행주형에는 부자 땅이 많다. 세상과 교류를 활발하게 할 수 있어 신문명을 쉽게 받아들인다. 또한 신문명을 일구어 세상 밖으로 나가기에 좋은 터다. 배가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있어야 한다. 잠실 위쪽에는 풍납동이 있다. 바람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잠실은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를 선도하며 크게 발전할 터가 분명하다.

그러나 바람은 순풍이어야 한다. 만약 역풍을 맞으면 배가 좌초될 수도 있다. 한강 개발이전까지 잠실은 한강 본류인 송파강이 감싸고 흐르는 지형이었다. 이때는 바람도 순풍으로 부드러웠다. 그러나 개발이후에는 한강이 반배하고 흐르는 지형이 되었다. 바람도 역풍으로 세졌다. 순풍에는 돛을 높이 달고 역풍에는 돛을 내려야 하는 법이다. 그동안 잠실에는 그다지 높은 빌딩이 없었다. 돛을 낮게 달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역풍 지역으로 변했음에도 순조로운 항해가 가능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23층, 555m짜리 롯데월드타워가 높이 솟았다. 돛대를 높이 올린 꼴이다. 역풍을 맞은 배는 소용돌이 칠 것이 분명하다. 악재가 거듭되는 롯데 사태가 우연만은 아닌 것 같아서 안타깝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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