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고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물으셨다.

“아들아, 넌 꿈이 뭐니?”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상황을 모면하려던 의도 반, 진심 반의 마음으로 연예인이 되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싶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조금 망설이다 다시 물으셨다.

“연예인은 특출한 끼가 있어야 성공한다. 평범한 너가 TV를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싶다면 ‘PD’라는 직업은 어떻겠니?”

당시 나는 PD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몰랐다.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 직업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막연했다.

PD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 너무나 궁금했지만 주변 어느 누구에게도 그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어른들은 “공부만 잘하면 돼”라는 답 뿐이었다.

답답했지만, 답을 찾을 길은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하교 하는 길에 ‘청소년 방송국 1기 단원 모집’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게 됐다.

그 길로 방송국을 찾아가 연출부 소속 단원이 됐다.

이 방송국은 관할 지자체의 정책사업으로 운영됐던 곳이다.

모든게 신기했다.

카메라, 편집 기기, 스튜디오.

방송국이 갖춰야 할 모든 시스템이 마련돼 있었다.

이 곳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나의 꿈은 확신에 찼고, 꿈을 현실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커졌다.

하지만 학교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방송국을 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미련은 남길 마련이다.

야자시간에 몸은 학교에 있었지만, 마음은 콩 밭에 가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이후 난 학창시절 방송단 활동을 토대로 꿈을 구체화 할 수 있었고, 관련 분야의 일도 시작 할 수 있었다.

또 그 틀 안에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도 했다.

그 결과, 지금은 언론인이라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환경 탓일까.

취재 과정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버릇처럼 꿈을 묻는다.

안타깝지만, 확고히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그들이 내가 겪었던 것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경험해보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기도 했다.

2017년 4월.

아쉬움으로 남을 줄 알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경기꿈의대학’을 운영하면서다.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 대신 방과 후에 자신의 꿈과 진로를 탐색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대상은 고교 1~3학년 학생들이고, 학년 구분 없이 평일 오후 7∼9시에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꿈에 대한 구체화는 대학이 맡는다.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전공분야를 선택하면 되고, 대학에서는 그 꿈에 대한 접근 방법을 이야기 해준다.

이를 위해 수도권 77개 대학 86개 캠퍼스가 참여한다.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은 경기도교육청이 한다.

꿈을 찾기 위한 밥상이 차려졌고, 학생들은 떠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고 한다.

또 ‘부실 대학에 예산을 우회적으로 지원하려는 목적 아니냐’ ‘유명 대학에서 참여가 적어 실효성이 낮다’ 는 목소리도 있다.

그들이 정책 취지와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연구했는지 모르겠지만, 반문하고 싶다.

‘지금처럼 주입식 교육과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을 거쳐 모두가 공무원 준비에 열을 올리기만 바라는가?’‘진로 탐색에 유명 대학은 왜 필요한가’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는 공부와 학교에서 맹목적으로 주입 시키는 공부 중 어느 것이 학생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묻고 싶다.

변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일이라고 마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다.

3년전, 경기도에서 시작된 9시 등교에 대한 우려도 상당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전국적으로 학생들이 아침밥을 먹고 등교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비정상을 정상화로 만드는 일.

그 일을 도교육청은 해왔다.

10년 뒤를 지켜보자.

꿈의대학을 경험한 경기지역 출신과 그러지 못한 지역 출신간의 온도차를 말이다.

얼마 전, 동창들과 만나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너스레를 떨며 한 이야기가 맴돈다.

“너가 지금의 교육시스템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문제아가 아니라 모범생이었을텐데. 지금 애들은 정말 좋겠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근데 아쉬운건, 그게 복인줄도 몰라”

천의현/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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