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떼’처럼 전전(輾轉)하던 보수(保守)층을 중심으로 역설적인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홍준표, 유승민을 찍으면 문재인이 된다’는 이른바 보수의 딜레마다. ‘문(文)만 아니면 된다’는 반문(反文)정서에서 파생된 갖가지 낯선 현상중 하나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반증이다. “막대기를 꽃아 놔도 찍어줬다”는 60대 이상 완고한 보수층이 물길을 잡았다. “박근혜 무덤에 침을 뱉겠다”는 40~50대 유연한 보수층이 물질을 하고 있다. 탄핵 정국때부터 심정적으로 공유해온 좌파 망국론(亡國論)과 우파 공멸론(共滅論)이 연쇄 반응을 일으킨 결과다. ‘대체론’은 이미 ‘대세론’을 깰 수 있을 만큼 세력화된 상태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거센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은 보수의 집단 절박감을 설명해주는 실체다.

배알도 없어 보이는 보수의 목표는 선명하다. 이안제문(異安制文). ‘안철수로 문재인 깨기’다. 풀이하면, (덜 위험할 것 같은) ‘안’으로 (더 위험해 보이는) ‘문’을 제압할 수 있다는 계산법에서 나온 전략이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식 생존 본능이다. 안철수를 권좌에 올려놓고 후일을 도모하려는 보수의 마지막 승부수다. 5년 안에 두 세력까지 다 망해주면 그야말로 ‘땡큐’다. 마치 집단 주문(呪文)과도 같은 연명술이 대세(大勢)가 기울었다는 운동장에서 마법을 부리고 있다. 매주 발표되는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보수 우파가 던진 승부수가 통하고 있다. 반기문→황교안→문재인 순으로 방황하던 TK(대구·경북) 표심에 안철수 쏠림 흐름이 감지됐다. 수도권과 충청의 승부 호흡도 거칠어졌다. 호남과 PK(부산·경남)의 심박수도 일정치 않다. 보수 우파가 안풍의 위력을 메가톤급으로 만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기서 보수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홍준표, 유승민이 걸림돌이 돼버린 것이다. ‘홍찍문’(홍준표를 찍으면 문재인이 된다), ‘유찍문’(유승민을 찍으면 문재인이 된다) 프레임은 허상이 아니다. 두 후보가 최소 300만~500만 표만 잠식해버려도 그것으로 승부는 끝이다. 반문 보수층이 ‘安으로 文을 깨보려는’ 간절한 희망을 여론조사에 고스란히 토해내고 있는 이유다. 사력을 다해 홍준표, 유승민에게 후보 탄핵 수준의 망신을 주면서 사퇴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역부족이다. 보수 우파의 집단 주문은 강력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홍준표, 유승민이 ‘이안제문’ 흐름에 올라탈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경남 귀신’이 될 뻔했던 홍준표는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금의환향했다. 여의도로 돌아오자마자 광야(廣野)로 떠난 유승민에게 ‘불도장’을 찍었다.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유승민은 ‘TK 서자’로 전락할 수 있는 멍에를 벗어던질 기회를 내팽개 칠 이유가 없다. 그는 변방(邊方)에서 돌아온 홍준표에게 ‘주홍글씨’부터 새겼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날로 대통령을 그만둬야 하는 사람(무자격자)이 보수의 대표가 돼서 되겠느냐.” 잃을 것 없는 보수 후보끼리 거칠 것 없는 말싸움만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박근혜 죽고, 나 죽고’ 동귀어진(同歸於盡)을 선택한 골수 보수층은 여전히 콘크리트다. 노련한 정객(政客) C는 작금의 보수 심리를 이렇게 진단했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보수 우파들이 달리 선택할 길이 없어서 전략적으로 안철수를 밀고 있는 겁니다.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싹을 틔울 시간을 벌어보자는 것인데…. 복장 터질 노릇입니다.”

보수는 이제 최후의 한 수를 고민해야 할 판이다. C는 ‘고사(枯死)시키거나 철수(撤收)시키는’ 방법 뿐이라며 꼬불쳐 놓았던 책략을 펼쳐놨다. “홍준표, 유승민의 지지율을 1~3%대로 끌어내리는 동시에 정당 지지율까지 쌍끌이로 폭락시켜서 양쪽의 주리를 한꺼번에 틀면 버텨낼 재간을 없을 겁니다.”, “일시적으로 안철수 지지를 철회해서 문재인 대세론을 다시 점화시키면 국민의당이 비문연대쪽으로 철수할 겁니다.” 닷새 뒤에는 후보 등록, 보름 뒤에는 투표용지가 인쇄된다. 마력을 극대화시켜줄 여론조사도 이제 막바지다. 보수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운명의 첫 주가 시작됐다.
기획이사/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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