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선거는 다 중요하지만 특히 이번 대통령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단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대통령의 후임자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들이 ‘정말 좋은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 몇 달간 주요 후보자들이 보여준 선거 캠페인들을 보면 이런 국민들의 기대나 의무감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전 선거보다 더 심각한 후진적 선거 양상인 듯한 생각까지 든다. 여전히 후보자나 각 정당들은 연일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가짜 뉴스(fake news)들까지 창궐하면서 네거티브 공방전을 더 가열시키고 있다.

물론 대통령 탄핵으로 당초 예정보다 일찍 선거가 시작되어 각 후보 진영이 정책공약들을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후보들은 나름 괜찮은 공약들을 내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 분위기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후보자들이 내놓는 비전이나 정책들은 그냥 구색 맞추기 아니면 선심성 공약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이 내놓은 정책이나 공약만 보고 투표하라고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요구하는 덕목들은 지식 정도나 전문성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후보자들이 내놓은 정책들도 유사한 것들이 적지 않고, 대다수 유권자들이 이를 정확히 판단할 능력을 가지도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때문에 흔히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정책/이슈 투표(issue voting)’의 가능성은 솔직히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후보자들이 정책을 제시하고 상호 토론을 통해 유권자들의 판단을 유도하는 후보자간 TV토론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TV토론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나치게 도식적인 공정성에 집착하다 보니, 백과사전식 질의응답 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후보자들 역시 차별화된 정책보다 작성해 온 모범답안들을 외워서 읽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몇 차례 토론을 거치면 서로 상대 후보의 좋은 답안을 베껴 후보자간에 정책 차이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TV토론을 통해 후보자간 정책입장 차이가 더 분명해지는 선진국들과는 상반된 결과다. 물론 시청율도 매우 낮을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주요 정책현안들을 놓고 후보자간 공방을 통해 흥미를 모으고 있는 미국의 TV토론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지난해 클린턴과 트럼프 간 TV토론처럼 인식공격으로 도배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TV토론과정에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정치적 리더쉽과 위기관리 능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선거 판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TV토론은 주요 정책현안들에 대한 후보자들의 입장을 알려준다는 의미뿐 아니라 후보자의 정책이해도와 유사시 국가를 경영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하게 하는 기회이어야 할 것이다. 가정이지만 지난번 대선기간 중에 그런 TV토론이 이루어졌더라면, 비선라인에서 작성해준 연설물에 의존하고 ‘세월호 침몰’ 같은 급박한 사태 발생 시 그렇게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따라서 공정성 같은 기계적 형평성만 지나치게 강조해, 사회자 질의에 후보자가 준비해 온 모범답안을 읽는 ? 아니 그것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외워서 읽은 티나 난다든지 말실수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따분하고 의미없는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 선거에서 정책이나 공약은 어차피 지켜지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공약(空約)일 뿐이라는 후보자들이나 선거 캠프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도 버려야 할 것이다.

어제 후보자등록이 시작되고 공식선거운동 기간에 들어서면서 3차례의 후보자간 TV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물론 지금의 선거운동 양상으로 보아 이번에도 박진감 없고 내용도 없는 공허한 TV토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를 주관하는 방송사들이나 선거관리위원회 모두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판단해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벤트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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