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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심층분석-홍준표] 불의에 맞섰던 모래시계 검사… 진짜 흙수저, 서민대통령 꿈꾸다

라다솜 radasom@joongboo.com 2017년 04월 19일 수요일

홍 후보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경남 합천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로 이사해 영남중·고를 나왔다. 빗물이 흐르는 단칸 월세방에서 온가족이 들러붙어 칼잠을 잤다고 한다. 어머니는 서문시장에서 사과와 쑥, 미나리를 팔아 가족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유년 시절 “고리 사채로 머리채가 잡혀 끌려다니던 어머니를 봤다”고 기억하는 장소는 지난달 18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대구 서문시장이다. 직물공장에 취직한 작은 누나의 월세방에 얹혀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밤 10시 전 무조건 소등하라는 집주인의 눈을 피해 이불 속에서 공부했다. 학비와 취직 걱정을 안해도 되는 육군사관학교를 가려다가, 부친이 훔친 비료를 사들였다는 누명을 쓴 사건을 목격하고 검사로 진로를 바꿨다. 빚을 내 마련한 등록금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1972년 2월24일 새벽 서울에 ‘유학’ 올 때 손에 쥔 건 단돈 1만4천 원이었지만, 그의 자존심은 1억4천만 원을 가진 것보다 컸다. 그는 지금도 고려대 법대 재학 시절 미팅에서 자신이 대구의 어느 명문고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여대생 험담을 하곤 한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 볼품없이 마른 고시생인 자신에게 “사법고시에 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며 결혼을 반대한 장인 얘기도 단골 메뉴다.

이런 깡은 그를 ‘모래시계 검사’로 만들었다. 서울지검에 재직하던 1993년 그는 ‘슬롯머신 사건’ 수사를 밀어붙여 ‘6공(노태우 정권)의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을 비롯해 권력 실세들을 구속시켰다. 이후 평균 시청률 50.8%의 신화를 쓴 드라마 ‘모래시계’의 소재가 된다. 스타 검사가 된 그를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영입했고 1996년 신한국당 소속으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해 첫 배지를 달았다.

홍준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말이다. 국회의원 시절 홍 후보가 TV토론에 나온다고 하면 상대 당은 “대체 말로 홍준표를 당할 사람이 누구냐”며 대적할 의원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천성이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부인 이순삼 여사가 아침마다 옷 매무새를 만져주며 “오늘은 밖에서 말 좀 줄이세요. 당신은 기운이 입으로 다 빠져나가서 살이 안 찌는 거예요”라고 당부한다고 할까.

변방의 섬이던 그가 중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2008년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다. 이어 2011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올랐고, 2012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마침내 당 대선 후보까지 확정돼 모든 정치인의 꿈인 대통령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만만찮다. 2심에서 무죄를 받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을 남겨둬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굴레를 완전히 벗지 못한 게 대선 레이스 내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같은 보수진영인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이를 들어 “무자격자”라고 맹공하고 있다. 만약 홍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시작과 동시에 헌법상 불소추 특권도 적용된다.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법원도 재판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를 방지하려면 재판 중인 자는 대선에 출마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헌법학자도 있다. 후임 도지사 보궐선거를 막는 ‘꼼수’를 썼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라다솜기자/radasom@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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