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소재로 해 영화로도 올려진 ‘신의 한 수’에서 제목을 빌려 정리한다. 개인의 삶 처럼 이번 대선판 역시 한 수로 끝내지거나 그렇게 맺음될 공산이 크다. 괜한 어깨너머 귀동냥이나 어제 본 신문 오늘 그리는식의 꼼수보다 이때쯤 정리를 한번 해두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착수〔着手〕바둑판에 돌을 놓다

돌은 올려졌다. 그리고 모든 프레임마저 달라졌다. 19대 대선은 야야(野野) 대결로 진행되면서 삼국시대 지역 대립은 희미해졌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착수된 대선 판은 어디로 튈지 모를 4차원의 20대 표심과 50대 이상 장·노년층 투표율이 승부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좁혀보자. 20~30대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50대 이상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로 몰리는 세대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언제는 20대 이상의 표심이 관심 밖에 있었는가. 결국 관심 대상은 50대 이상이다. 이들은 초유의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예전의 미적지근한 투표율을 높이기 충분하다. 다시말해 대선 착수의 공식은 50대 이상이 당연히 높은 투표율을 나타내고 20~30대는 투표 당일에 들로 산으로 향할 것이란 얘기였다. 더 확실한 것은 20~30대는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해 야권이 유리하지만 단지 투표율이 하락하면 반사적으로 여권이 유리할 것이란 착수의 공식이었고 지금도 그 공식은 유효하다.

패착〔敗着〕지게 되는 나쁜 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차세대 5G’를 일부러 ‘차세대 오지’로 읽었다. 어쩌면 이전에 ‘3D’를 ‘삼디’ 로 부른 뒤의 비판에 대한 몽니(?)다. 짐작하다시피 5G는 일반적으로 ‘파이브지’로 읽는다. 문 후보의 이같은 ‘오지 발언’은 분명히 뼈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쓰리디프린터가 아닌 ‘삼디 프린터’로 읽은 데 대해 라이벌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후보와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도 제대로 된 경쟁은 아닌 듯.... 물론 안 후보의 부인에 대한 교수임용 의혹이나 문 후보의 아들 채용 의혹도 분명 패착으로 작용할 소지는 있다. 어찌 아는가. 과거 이회창 후보가 아들 병역의혹 하나로 나 뒹군 사실은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여기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뚝심이나 입이 그를 청와대로 보낼지 아니면 패착의 길로 머무르게 할지 여전한 궁금증이다.

포석〔布石〕전투를 위해 진을 치다

이번 대선은 지나간 대선처럼 길게 참고 가는 인내의 마라톤 레이스는 절대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주마등을 빠른 속도로 돌리는, 혹은 빙상의 쇼트트랙 경기다. 시작부터 투표장까지의 짧은 시간 탓이다. 각 당마다 포석을 잘 두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 후보마다 엄청나고 전문적인 대학교수들로 진을 치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에 저들이 미는 후보가 당선되면 또 청와대에 들어갈 것이고 지금의 이 사태를 만든 교수출신 청와대 관료, 김종 이나 안종범 같은 사람을 또 다시 보게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생각해 볼 때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문재인 후보는 대선후보로 선출돼 석 달간 레이스를 벌였다. 하지만 문 후보를 비롯해 대선후보들 모두 4월 초를 전후해 후보로 선출돼 한 달 남짓한 선거전에 돌입해 그 만큼 긴장감 넘치고 때로는 모든 것을 압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쇼트트랙을 보았듯이 한번 코너링에서 넘어지면 그 것으로 얘기는 종결된다.

행마〔行馬〕조화를 이루어 세력을 펴다

문 후보나 안 후보가 같은 날 노심(老心)을 잡고 있었다. 복사판 행마. 두 사람 공히 기초연금 월30만원을 얘기했다. 어려운 얘기 제쳐두고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데 같은 뜻이다. 그리고 이제 청년만의 문제를 넘어 저출산 등 다른 사회 문제와 연결돼 있는 청년실업도 마찬가지다. 청년 실업문제가 말 그대로 국가적 핵심 과제라는 의미로 대선후보들 역시 청년 일자리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앞세우고 있어서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경우 공히 한시적 특단 대책까지 제시하면서 젊은 유권자의 표심을 공략한다. 물론 이런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선 공약 시행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지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없다. 여기에 우(右)클릭화 된 안보도 빼 놓을 수 없다. 사드문제부터 지금의 절박한 안보에 조화를 이루어 세력을 펴고 있다. 물론 모두가 표심에서다. 화약냄새 진동하면 경제는 무슨 소용이고 일자리는 무엇에 필요하겠는가. 이 점에 기실 공감하는 후보들이다. 물론 이런 안보문제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절대 갑식 나 홀로 행마하고 있다. 노동문제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5시퇴근제’를 중심으로 역시 혼자 행마하는 중이다.

단수〔單手 )한 수만 더 두면 상대의 돌을 따낼 수 있는 상태

대선 지형을 뒤흔들고 있는 ‘신중도층’은 유권자의 20%가량으로 통계된다. 이런 신중도층은 보수와 진보 진영의 극단적 대결을 거부한다. 다만 이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나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들을 공략해야 돌을 따온다. 얼마전 안 지사에게 쏠렸던 신중도층에 적지 않은 보수층이 가세하면서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안 지사보다 더 크게 뛰고 있다는 분석만 봐도 알 수 있다. 홍준표 대선후보가 어제 국민의당 손학규 상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해남 토굴로 가서 또 정치쇼 하지 마시고, 광명 자택으로 가셔서 조용히 만년을 보내시라“고. 박지원 말대로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재주(?)를 지닌 손학규의 열 받은 마음을 박박 긁기 충분한 단수다. 홍 후보는 영남권 유세에서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자평한다. 심지어 그는 4월 말이 되기 전 마지막 링에는 안철수 후보는 내려오고, 홍·문의 좌우 대결이 될 것으로 확신하지만 글쎄.

사활〔死活〕삶과 죽음의 갈림길

모든 후보가 그러하듯 홍 후보는 이번 대선에 자신의 모든 사활을 걸겠다고 말했다. 사람을 뜻하는 퍼슨(person)의 어원인 페르소나(persona)는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가 사용했던 가면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그렇다. 인간은 가면을 쓴 존재로 인격, 성품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쓴다. 이번 대선에 사활을 건 주자들 모두 사람이다.

계가〔計家〕바둑을 다 두고 승패를 가리다

살고 죽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 날이 오고 지나면 누구는 재수를 각오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한강이나 낙동강에서 모두 빠져 죽자고 했으니 두고 볼 수 밖에.

문기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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