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밸리 입주하면 더 심각

▲ 판교역 버스정류장. 연합
"승용차가 있지만 주차할 곳이 없어 1시간 반을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번갈아 타며 매일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만원 지하철과 버스에 매일 시달리니 날마다 녹초가 됩니다."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IT기업 과장 윤모(38)씨는 서울 구파발에서 회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번갈아 타며 출퇴근하고 있다.

윤씨 회사가 입주한 건물에 지하 주차장이 있지만, 입주면적 기준으로 4대만 배정받아 윤씨에게까지 돌아올 주차할당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윤씨는 승용차로 1시간이면 올 거리를 두 번 환승하며 출퇴근길 시간을 길에 버리고 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김모(41) 팀장 사정은 좀 황당하다.

분당구 정자동에 사는 그는 승용차로 15분이면 출근할 수 있지만, 시내버스를 두 번 갈아타며 1시간이 걸려 출근한다.

김 팀장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좋은 데 노선이 돌아오고 그나마 출근길은 콩나물시루 버스가 되기 일쑤"라며 "1분이 아까운 출근길에 버스 1∼2대를 놓치고 나면 화가 치민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이런 사정은 판교테크노밸리 내 대부분 기업체 직원들이 느끼는 불편이다. 입주 초기부터 시작된 불편이지만 2015년 말 사실상 입주가 완료된 이후에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주차난이 고급인력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코스닥상장 기업 임원은 "고급인력을 스카우트하려고 면접을 보면 되레 출퇴근 여건부터 물어봐서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가용 승용차 이용보다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해야 하지만 문제는 대중교통 여건이다.

▲ 사진=연합
판교테크노밸리의 경우 주차난이 대중교통난으로 이어져 출근전쟁까지 부른다.

매일 아침 출근길 판교역(신분당선) 3번과 4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은 작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마을버스를 타러 뛰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됐다.

놓치면 지각이라는 생각에 이미 만원이 된 마을버스에 앞문, 뒷문 가리지 않고 올라타다 보니 22인승 버스는 금세 터질 듯 50여명이 꽉 찼다.

판교역과 판교테크노밸리를 오가는 마을버스에 붙은 '맞춤형 버스'라는 별칭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이 때문에 1㎞ 이상 거리를 긴 대열을 이뤄 출근하는 광경이 매일 아침 반복된다.

그나마 메이저 IT 기업들은 출퇴근시간대 자체 셔틀버스를 운행하지만, 중소벤처기업 직원들의 출근전쟁은 일상이 됐다.

지난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실태조사 결과, 판교테크노밸리 근무자 수는 7만2천820명이다. 이 중 성남 거주자는 27.9%, 성남시외 거주자는 72.1%로 직주(職住) 분리가 심해 주차장과 대중교통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차장은 2만2천84면으로 예측수요(2만3천812면=근무인원×0.327) 기준으로만 봐도 1천728면이 부족하다.

여기에다 스타트업 캠퍼스 등 각종 지원시설과 기업체 방문객이 늘어나 주차 부족이 심화했다.

주차장법과 조례에 따라 업무용 시설은 100㎡당, 교육연구시설은 200㎡당, 근린생활시설은 135㎡당 1대의 주차장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법적 기준을 지켜도 판교처럼 인력집중형 단지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공영 및 민영주차장이 있지만, 판교역 주변에 몰려있는 데다 민영주차장의 경우 월 이용료가 20만원 정도여서 인근 서현역보다 비싸다.

성남시는 판교구청사 예정부지에 811대분 임시주차장을 확보하고 버스노선을 9개 노선 51대 778회로 늘렸지만 역부족이다.

승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오전 8시∼8시 40분, 오후 5시 50분∼7시 배차간격을 1∼3분으로 좁혔지만, 출퇴근 때 일시에 몰리는 수천 명의 승객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성남시가 올해 2월 러시아워 1시간 동안 판교역에서 판교테크노밸리 방향 이동자 수를 분석해보니 보행자(32% 1천583명)에 비해 버스 탑승자(68% 3천344명)가 훨씬 많았다.

성남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1∼12월 판교 입주기업 100개사를 대상으로 기업경영애로요인을 설문조사한 결과, 주차난(5점 만점에 4.12)과 대중교통 문제(3.35)를 상위순위로 꼽았다.

경기도와 성남시는 판교테크노밸리 개발이 완료돼 주차공간을 더 늘리기 어렵다고 보고 대중교통 확충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인근에 4만여명이 근무할 판교창조경제밸리가 조성되면 이런 사정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 판교테크노벨리. 연합
이런 가운데 성남시가 추진하던 판교 트램(노면전차) 기본·실시설계용역은 인근 판교창조경제밸리 교통접근성 제고방안 용역(LH 발주·올해 3월 말∼9월 말)과 맞물려 일시 중단된 상태다.

판교창조경제밸리의 경우 신분당선 추가역 설치가 쉽지 않은데다 트램 노선 연장, 고속도로 환승시설(ex-Hub) 등 이외에는 뾰족한 방안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경기도와 국토교통부가 올해 12월 판교역에서 창조경제밸리까지 편도 2.5㎞ 구간에 12인승 자율주행 셔틀버스 운행을 시작할 계획이지만 이 역시 대체교통수단으로 보기 어렵다.

경기도 관계자는 "임시운행허가를 받아 연구참여형 탑승을 추진할 계획이나 당장 노선버스처럼 정기운행은 어렵다"고 밝혔다.

도는 새로 조성되는 판교제로시티를 자율주행차 관련 산업의 세계적 랜드마크로 육성할 방침이지만, 정작 그 도시 내 교통 문제는 제자리걸음이다.

판교에서 기업협력성장플랫폼 기업을 운영하는 박진석 대표는 "글로벌 IT도시로 만든 첨단도시에서 교통 문제로 고급인력 유치가 어렵다면 문제가 심각하다"며 "창조경제밸리가 입주해 사정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법률 규제를 완화해서라도 무료 셔틀버스 운행, 카풀과 카셰어링 플랫폼 허용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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