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토론을 보면서 더 확신을 가지게 되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성숙한 국민들의 수준과 국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얼마나 미치지 못하는지, 또한 민주주의는 토론에서 시작하는데 초등학교 반장 선거보다 못한 토론을 보면서 우리의 지도자 양성 교육이 얼마나 부실한지도 잘 알게 되었다.

국민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최소한 헌법을 수호하지 못할 정도의 무능 때문에 탄핵된 대통령보다는 훌륭한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희망하면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거나,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 후보자라면 국가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제시하고,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올바른 가치관과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과 도덕성을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어린 시절이 실수라지만 정상적인 청소년이라면 생각하기도 힘든 돼지발정제 논란부터, 아들 부정취업, 배우자 교수채용의 정당성 여부 등 입에 담기도 불편한 다툼들이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시간에 텔레비전 속에서 대통령 선거 토론이라는 허울을 쓰고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껏 정책에 대한 논의는 우리 헌법의 대통령 권한이 어떻고, 검찰개혁이 어떻고, 국정원 개혁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진부한 쟁점들에 대해 얕은 수준의 언쟁에 불과할 뿐이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 시절, 북한인권법의 유엔 결의에 대해 기권하면서 북한과의 사전 접촉이나 승인이 있었느냐에 대한 쟁점까지 추가되면서 후보들이 자신의 정책을 주장하고 검증받는 것보다는 과거를 파헤치고 서로 비방만 하는 토론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후보자의 능력 여부 이전에 후보자가 대통령이 될 정도의 기초적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치적 견해 차이에 따라 처벌받은 것이 아니라, 도덕적 비난의 정도가 높은 형사 범죄의 수준에 이르는 행동을 한 전력이 있거나, 자신의 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한 사람은 스스로 대통령 자격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도덕성이 없는 지도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과 질서를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법을 마음껏 유린하면서 서민들에게는 엄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설득력과 정당성이 없는 형식적인 법치주의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정의로운 국가라면 입법자와 대통령이 먼저 자신들이 만든 법률에 엄격히 구속되어야 한다.

한편, 헌법이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이유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헌법을 지키기 위한 것임은 두 번에 걸친 헌법재판소의 탄핵판결에서 확인되었다. 여기서 국가와 국민 그리고 헌법을 수호한다는 것은 국가의 자주독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국가간 현실적인 힘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여전히 6?25와 냉전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벗어나야 하지만, 아직도 6?25 세대들이 아프고 슬픈 과거 속에 살고 있으며, 북한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향해 핵미사일을 개발했고 전쟁이 발발하면 언제든 사용한 준비를 마친 상태로 보인다.

적과 주적의 논란도 이런 배경 속에서 논의되고, 어떻게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을 둘러싼 위기 상황을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됐어야 한다. 그 바탕에는 한반도 비핵화, 현재의 북한 정권을 인정할 것인가 여부에 대한 쟁점이 깔려 있다.

미국은 물론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를 원한다. 의견이 일치된 것이다. 미국은 자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받고 싶지 않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그런데 후보들은 회고록 사건, 사드배치에 대한 말 바꾸기, 사병들의 복지 등에 대해서만 뜨겁게 토론했다. 그 논점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후보들이 무엇이 시급한지 국가를 어떻게 이끌고 가야하는지에 대한 인식과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차라리 상대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토론회를 2회 정도 거친 후에 정책토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다. 시간도 4시간 정도 충분히 줘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게 해야 한다. 정책토론에서는 태블릿이나 자료를 보는 것을 허용하고 토론시간도 4시간 이상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 또한 사회자는 토론이 산으로 가지 않는 한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이 밑바닥까지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말이다.


류권홍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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