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의 고요

한 송이 꽃잎이 
땅 위에 내던져졌을 때
시간은 눈을 감은 채
어떤 바람결에도 머물지 않았다
잎새 위에 푸르른 빗방울 듣는 소리도
뜨거운 지층의 맥박 소리도
오후의 바람이 스며드는 한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호두알이 벌어져 울먹이는데도
적막은 또 다른 적막의 손을 놓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지나간 것은 다 헛된 것이다
진실은 늘 그 헛됨 속에 있는 것이다
한 잎의 꽃도
한 알갱이의 열매도 보여주지 않는
삶의 거짓은 그래서 진실이다
내던져진 한 송이 꽃을 주워들었다
펄럭이며 날아오르는
한 잎의 고요
떨고 있는 시간의 입술에 입 맞추었다


이진숙
1993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원숭이는 날마다 나무에서 떨어진다’ ‘판다를 위하여’ ‘발가락이 그립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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