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생활을 실천한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소원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한 발짝만 비켜 주시오”라고 하였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권력과 명예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디오게네스에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방문보다 따뜻한 햇볕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날씨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우리의 몸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일 게다. 잔뜩 찌푸린 날에는 우울해지기 쉽고 날씨가 쾌청하면 기분이 훨씬 가볍고 즐거워진다.

그런데, 이런 여유 있는 일광욕은커녕 언제부터인지 하늘 쳐다보기가 무서운 지경에 이르러버렸다. 지난달 서울, 경기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아흐레나 ‘나쁨’이었고, 아마도 4월의 수치는 더할 것이다. 그 맑던 한국의 하늘이 왜 이렇게 찌들어버렸나? 바로 미세먼지가 주범이다. 이 미세 먼지란 황사와는 또 다른 개념의 것이다. 황사란 알려진바 대로 중국 내몽고 등지의 건조한 사막지대에서, 강한 바람에 의해 높은 대기로 들려 올라간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이동해 지상으로 떨어지는 자연현상이다. 한반도에서 황사에 관한 기록으로는 신라시대인 서기 174년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후 백제, 고구려, 조선시대에 까지 황사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당시에는 그것을 왕의 부덕한 소치로 인한 신의 노여움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좀 우습기도 하지만 기상과학의 수준이 오늘날과 같지 않았으니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반면에, 미세먼지란 이 황사와는 급이 다르며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석유, 석탄 등 화석 연료가 연소될 때 발생하는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공장의 매연 등이 주원인이다. 중국 동북지역의 산둥, 허베이, 장쑤성 등으로부터 날아드는 1급 발암 물질과 중금속을 포함한 이 (초)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고, 숨을 쉬는 한 함께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폐와 혈관에까지 침투하여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니 호흡기 계통이 약한 사람들에겐 가히 공포 그 자체다. 지난 세기 중반, 급격한 산업화로 공장과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매연으로 런던 시내는 순식간에 죽음의 안개인 스모그로 뒤덮이고 사람들은 눈과 호흡기가 마비되어 5일 만에 4천 명, 이듬해 봄까지 1만2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겨울부터 한층 극심해진 중국 발 미세 먼지는 북서풍에 실려 사계절 내내 한반도를 향해 날아들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마주한 현재 진행형의 심각한 문제이다.

며칠 전, 한 방송사와 환경단체의 요청으로 대선후보들이 미세먼지에 관한 정책들을 내놓았다. 몇몇 후보가 한·중 정상외교 차원의 해결책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쩌랴, 열흘 전쯤인가, 방한한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대기오염 문제는 중국도 해결이 어려우며, 50년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니 말이다. 어떤 후보들은 디젤차를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로 지적하고 점차적으로 모두 퇴출시키겠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우선순위가 노후된 디젤 화물차일 텐데, 거기엔 대게가 생계가 걸려있는 문제가 있다. 또한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 신규 건설을 중단하고 기존 시설은 태양광·해상풍력 등 친환경 발전소로 대체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전기세 대폭 인상이 불 보듯 보인다. 미세먼지 기준치를 선진국 수준으로 상향한다는 공약도 있다. 어쨌거나 환경에 있어선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한국의 하늘은 지금보다는 50%쯤은 맑아질 것 같으니, 제발 그것이 공약(空約)으로 끝나지 않기만을 빌어본다. 그리고 당장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 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허나, 나와 내 가족이 마실 깨끗한 공기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정하 중국임기사범대학교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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