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란 말이 언제 생겼을까? 세계사 최초의 신생국인 미국이 독립과 동시에 대통령제를 채택하였으니 당연히 대통령 즉 “president“라는 말도 그때부터 생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president라는 말이 ”preside” 즉 “앞에 앉다”에서 연유되었으리라 짐작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발상과 하나도 다름이 없다고 할 것이다. 신라 초기에도 마을 최고지도자가 앉을 자리는 언제나 사람들의 맨 앞자리에 작대기를 꽂아 놓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도자의 위치는 동서고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어느 시대 어느 집단이건 당연히 그 조직의 최고 지도자는 언제나 뭇사람들 “맨 앞”에서 이끌어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을 최초로 접했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미국의 대통령을 자신들의 추장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상대로 인식하면서 “미국의 추장”으로 불렀다.

한자문화권에서 살고 있었던 우리의 경우에는 이런 지도자를 무엇이라 불렀을까? 미국을 완전히 이해하기 이전까지는 물론 임금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미국대통령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청국에서조차 미국대통령을 “통령” 또는 “총통”으로 불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서 “대통령”이란 말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가장 최초의 번역은 물론 중국번역이었다. 1883년 민영익이 고종의 특사로 미국대통령 체스터 아서(Chester A. Arther)에게 신임장을 제출할 당시에 붙인 호칭은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었다. 중국발음으로는 “뿨리씨텐더”란다. 발음과 관계없이 필자 나름대로 그 뜻을 해석해 보면 어떨까 싶다. “옥새(玉璽)를 쥐고 하늘의 덕(天德)을 베풀어 나갈 최고의 통치자(伯理)”쯤으로 이해되니 말이다. 미국 사람들이 이 말을 이해하였다면 아마도 참으로 그럴듯하다고 손뼉을 쳤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으로 번역하거나 핑퐁이라는 한자가 없으니까 아예 ??(핑퐁)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쓰고 있는 중국사람들의 지혜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 아닌가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사람들이 번역해서 쓴 “대통령”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대통령이라는 말을 최초로 쓴 것은 1884년 고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승정원일기’에 기록하고 있다니 말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1858년의 미일수호통상조약에서 처음 대통령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일부 학자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먼저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쓴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여겨진다. 물론 여러 자료들을 보면 동학에서는 “통령”이라는 말도 사용하였고 또 산적 두목을 “두령”이라고 부른 적이 있는 것을 보면 일본사람의 “대통령”이라는 번역이 낯설지 않을 정도여서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지지 않았나 한다.

우리의 헌정사에서 대통령의 호칭이 문제가 된 적도 없지 않았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국내외에서는 6개의 임시정부가 탄생하였다. 이는 애국지사들이 저마다 불타는 애국심으로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에서 임시정부를 구성하였기 때문이다. 상해의 임시 정부를 필두로 노령(露嶺)의 대한국민의회정부와 서울의 한성임시정부가 대표적인 예였다. 이해 9월 상해임시정부가 노령정부와 한성정부를 통합하여 대한미국임시정부로 발족하였다.

이때 그해 5월부터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에 앞장 서 활동하던 이승만은 상해임시정부로부터 위촉받은 “국무총리”라는 직함을 사용하지 않고 헌법에도 없는 한성임시정부의 직명인 “대통령” 즉 “프레지덴트”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논의를 거듭였으나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었던 이승만의 고집을 꺾지는 못하였다. 할 수 없이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책임제 헌법을 대통령중심제로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이승만으로부터 시작된 대통령중심제 헌법은 임시정부를 거쳐 해방이후의 제헌헌법에서도 어김없이 답습되었다. 그 뒤 내각제와 대통령중심제의 혼합형 헌정체제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형성된 뒤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내각제하에서의 국무총리한사람과 11명의 대통령을 경험하였다. 이제 12번째 대통령을 맞이할 차례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와라!” 문자 그대로의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여!”

김중위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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