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대통령이라는 말은 1892년 미국식 대통령제의 ‘프레지던트(president)’에 대한 번역어로 일본에서 생긴 조어(造語)라는 것이 가장 유력한 유례다.

1881년 이헌영이 신사유람단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조사, 문견한 바를 기록한 ‘일사집략’에 “신문을 보니 미국 대통령, 즉 국왕이 총에 맞아 해를 입었다고 한다”는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후 1883년에 체결된 한미조약에 ‘president’의 중국식 표기인 ‘伯理璽天德(백리새천덕)’을 사용하다가 1892년부터 공식 단어로 ‘대통령’이 등장했지만, 대통령이란 단어가 사전에 처음 등록된 것은 1938년 문세영(文世榮)의 ‘조선어 사전’이다.

대통령제는 미국혁명의 소산이다.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의회에서 미국연방헌법이 제정돼 역사에 처음 등장했다. 왕권에 대한 도전과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입법부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미국연방헌법의 대통령제는 독재의 출현과 권력 남용 방지, 강력한 중앙정부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미국연합체제는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으로 호칭됐고, 이미 ‘프레지던트(president)’라는 직책이 행정부서에 존재했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 간의 권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근거한 균형헌법 제정이다.

정치구조의 모범이라 칭할 정도의 미국식 대통령제는 미국에서만 성공한 제도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상당수 나라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식이 아닌 대통령중심제이거나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대통령제다. 대통령이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 임명권과 입법권의 일부 권한까지 장악한 무소불위의 권한 행사다.

우리나라 통치권자들도 예외없이 권력욕에 헌정파괴를 일삼았다. 자유당이 1954년 정족수 미달의 헌법개정안을 ‘사사오입 개헌(四捨五入改憲)’으로 불법 통과시켰다. 1969년 민주공화당은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3선개헌(三選改憲)’안을 통과시키며 1972년 이후 유신체제와 함께 장기집권의 길을 마련했다.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도 비록 개헌까지는 아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알고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

이같은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변화된 모습이다.

새정부 첫 인사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이낙연 전남지사를 지명했다. 대탕평·통합형·화합형 인사 약속의 실천이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를 지명해 국정원의 국내정치 관여 행위를 철저히 근절시킬 임무를 부여했다.

젊은 청와대, 역동적이고 탈권위, 그리고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로 변화시키고 있다. 검찰출신이 독식했던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 검찰 출신으로 임명해 대대적인 검찰개혁을 예고했다. 대국민 소통 창구인 국민소통수석에 정치부 기자 출신인 윤영찬 수석을, 대통령 최측근이 맡아온 것이 전례였던 총무비서관도 흙수저 출신인 이정도 예산정책 전문 행정공무원에게 맡겨 철저히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른바 측근들보다 실무형 인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베 신조 일본 총리와 잇따라 전화 통화를 갖고 사드와 위안부 문제, 북핵 해결을 위한 공동 노력 등 외교·안보에 주력하고 있다. 자주국방을 위한 ‘핵잠수함’ 보유나 독자적 미사일방어체계 구축 주력, ‘바다의 사드’로 불리는 SM-3 요격미사일 도입 의지도 강하다.

부처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청와대 비서실도 개별 부처 대응에서 정책 아젠다 중심으로 개편했다. 정책실장을 복원하고 일자리수석을 신설했다. 일자리는 새정부 국정과제 1순위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부터 청와대 본관 집무실이 아닌 비서동인 위민관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청와대, 참모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늘 소통하기를 바라는 문 대통령의 의지 표명이다. 업무와 일상적인 대통령의 일들이 참모들과 격의 없는 토론과 논의를 거쳐 진행된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 조직이 완료되는대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꿀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다.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할 경우 임기내 권력구조 개편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새 정부 출범 1년안에 개헌 방향에 대한 정치적 합의 완결이 필요하다. 내년 국민투표 이전에 국민여론에 대한 정지작업도 선행돼야 한다.

권력의 맛에 도취해 또다시 잘못된 전철을 밟아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김재득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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