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는 촛불이 만든 결과다. 그러니 나머지는 곁불이다. 촛불이 유발했고 그 촛불을 앞에서 따른 사람은 문 대통령 자신으로 지금에 남아있다. 나는 이 모두의 결과에 정신 못 차려 스스로 정권을 넘긴 보수의 악다구니가 떠올라 지금까지 마음이 번잡하다. 그러나 보수는 다행히도 자체정리중이다. 그래서 전면에 보이지 않고 수장 역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미국 체류중으로 먼발치에서 이래라 저래라는 얘기만 들리고 있다. 물론 이렇게 번잡하다는 마음의 다른 한 구석은 하루아침에 뉴스들이 여당 야당을 바꾸어 부르고 화면에 보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안 보이는가 하면 또한 과거 잊혀 졌던 사람들이 문턱조차 넘기 어려운 ‘청기와집’을 드나들면서 그들이 적폐라 지칭하던 보수의 소위 부역자들을 겁주고 있던 혼란과무관 하지 않다.

사과로 마무리는 매듭졌지만 더불어민주당 대선캠프에서 총괄본부장을 지낸 송영길 의원이 대선승리 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정계은퇴를 거론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패장에게 갑옷 벗고 모든 것을 내놓으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게 들린 당시의 정황에 상대는 적지 않게 당황했고 마침내 움크리던 세력 모두가 화기를 총동원해 집중했고 송 의원은 무릅을 끓었고 얘기는 그렇게 묻혔다. 송 의원이 이런 얘기를 해 구설수에 오를 것을 몰랐을까. 의도된 발언이라는 의심을 받기 충분했다. “아 이 사람들 저러다가 임기내내 복수혈전으로 온 동네 쏘다니며 피만 묻히다가 끝날 생각인가...” 하는 얘기가 귓전을 맴돌았다. 이와 유사한 일이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전개될지 누구도 몰라서다.

이러한 와중에 문 대통령 핵심 참모들이 서서히 백의종군(白衣從軍)에 길을 밟고 있다. 어쩌면 예상된 수순이다. 모두 다 자리를 내놓으라 하면 곤란할 지경에 이 아름다울 절차는 그래서 보기에 좋았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피만 안 나눴지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의 그들이다. 문 대통령과 과거 함께 일했던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부터 “제 할 일을 다했다”고 선언하며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문 대통령과 어려웠던 가시밭길을 걸어오던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도 “문 대통령을 응원하는 시민으로 조용히 지내겠다”고 말했다. 이 뿐인가.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측근중의 측근 최재성 전 의원도 “비켜 있겠다”고 만 말했다. 집약하면 모두의 공통적인 메시지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대의명분에 맞는 얘기들이다. 줄여보자면 문 대통령과 같이한 시간들이 정권 교체를 갈구해서지 권력을 원하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사실 이들 모두 지금 나서봤자 ‘패권’이요 한 발을 빼고 있어도 ‘비선’이라는 말을 받기 충분했다. 이런 사람들이 문 대통령 주변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매일을 하마평으로 지내야 할 정권 초다. 최재성 전 의원에 말처럼 대통령에게 신세 지는 것이 국민에게 신세 지는 것을 다른 사람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단지 실천의 의지가 박약해 생기는 일이다. 물론 문 대통령 임기 그 어느 날에 많은 어려움에 처해있어 부른다면 모른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겨울부터 우리는 정치가 불평을 해소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합리적 방법을 얻어내지 못할 때 분노가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삼키는 것도 경험해 왔다. 무엇을 앞세우든 집단의 힘이 위세를 부리고 사람을 매도하고 상황을 왜곡하는 장이 돼가서는 정상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백의종군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뒤에서 돕고 있을 때 이들을 진정으로 도와야 한다. 괜한 의심의 눈초리도 삼가야 하며 만일 지금의 약속이 허투루 들릴 때 회초리를 들면 된다. 이들 퇴장의 진정성은 유효기간이 많다. 다만 우리 서글픈 정치사로 보면 이들 핵심 측근들이 권력을 포기하고 진정으로 뒤로 물러났다는 자체 하나만으로 국민들은 만족하는지 모른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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