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국 인천시선관위 행정과장

 지난 제19대 대선을 불과 20여일 앞둔 4월 20일, 제18대 대선과 관련한 개표부정 의혹을 소재로 한 영화 ‘더 플랜’이 개봉되어 많은 이들의 불안과 의심을 부추긴 일이 있었다. 다행히 중앙선관위가 영화제작진측이 원할 경우 보관중인 투표지를 통해 공개적인 재검표도 가능하나 이 경우 영화제작진측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신속히 밝히고, 선거부정방지를 표방하는 시민단체인 ‘시민의 눈’에 투·개표 과정과 투표지 보관상황 참관을 특별히 허용하면서 더 이상의 사회적 파장 없이 제19대 대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제 선거는 끝났고 더 이상 개표부정의혹 제기로 불거졌던 사회불안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제19대 대선을 흠결 없이 치러낸 이 시점이 독자들과 함께 그들이 제기했던 의혹들을 냉정히 살펴 그 사실적 오류와 허구성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사회적 문제제기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고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영화 ‘더 플랜’을 논리적 구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생각하 지마세요’라고 호소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코끼리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 사람은 어떤 단어를 들으면 이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와 연관하여 이미 짜여진 도덕적·사회적·정치적 신념의 틀인 ‘프레임’에 끼워 맞춰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 전략’은 음모론자들이 사람들을 기만하는 전형적 수법이기도 하다.

‘더 플랜’도 이와 유사하다. 투표지분류기는 보안자문위원회의 검증을 거친 다중 보안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지분류기에만 의존하여 개표결과를 확정짓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순서로 심사·집계부에서 개표사무원이 수작업으로 재확인하고 이 과정을 정당·후보자의 개표참관인이 자유롭게 참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정당추천위원이 포함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의 검열을 거쳐 확정된다. 이후에도 투표지라는 실물이 남아 있으므로 개표결과에 이의가 있는 정당·후보자는 소송을 통해 다시 한 번 검증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개표의 공정성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이 부분에 대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가볍게 설명하고 단순 해킹장면 시연이나 일부 개표참관인 등의 증언을 통해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리고는 일명 ‘k값’을 제시하면서 투표결과 통계수치가 해킹 조작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영화 상영 후에도 지난 대선 결과를 공개 검증해보자는 선관위의 제안은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본인들이 제기한 k값 의혹을 해명하라고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이렇게 그들이 만든 ‘프레임’에 말려든 결과 많은 사람들이 k값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개표의 공정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인양 착각하게 되었다.

이번 제19대 대선 개표에는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개표부정의혹을 제기했던 시민단체 회원들도 개표사무원이나 참관인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모 일간지 기자 2명이 개표부정의혹을 파헤친다며 개표사무원으로 등록하여 직접 만지고 보고 들은 내용을 기사화하기도 하였다.

투표지분류기와 관련한 개표부정 의혹 제기가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불신을 키워 이를 해소하기 위한 국가기관의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이 들었다. 선거가 잘 끝났다고 이대로 잊어버릴 것인가?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르는 음모론에 대해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강희국 인천시선관위 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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