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07년 독일 미술계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전시가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기억 : 게오르 바젤리츠의 러시안 페인팅’.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오솔길에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던 5월로 기억한다. 꼭 10년이 지난 전시가 불현 듯 생각나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우리문화예술의 현실이나 거꾸로 가고 있는 나라 경제에 대한 지나친 염려는 아닌지.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독일의 대표적 현대화가로 1938년 동독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 독일 신표현주의의 대표 작가이다. 1969년부터 거꾸로 된 그림 ‘러시안 페인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안 페인팅’시리즈는 모델이 되는 원작이나 사진을 기초로 한 작업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그림과 사진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하고, 원작의 작가명이 작품 속 말미에 괄호 안에 표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젤리츠의 ‘러시안 페인팅’은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 그가 자란 구동독 시절의 기억과 자신이 경험한 기록들의 이미지가 화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회화’로 재탄생한 것이다.

▲ 연단 위의 레닌(A. M. 게라시모프) 1999, 캔버스 위에 유채, 250×200cm

대형 캔버스에 거꾸로 서있는 ‘연단위의 레닌’은 레닌의 사진을 원본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가벼워지고, 사회주의권의 해체불가침의 권력자 초상이 거꾸로 걸렸다는 사실은 특별한 시각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레닌의 기세는 곤두박질치는 듯하고, 화면은 물감 반, 빈 공간 반의 가벼운 형태로 바뀌었다. 캔버스에 유화인 작품임에도 마치 투명하게 표현된 수채화 작품을 보고 있는 듯하다. 원작을 기초로 제작되었으나, 원래 가지고 있는 내용이 재형상화 되어 새롭게 보인다.

거꾸로 사물을 본다는 것, 호기심을 갖게 하며, 오랫동안 바라보게 한다. 바젤리츠 작품은 한시대의 열망과 통념을 뒤집고, 시간을 거슬리고, 경쾌하고, 화면크기에 압도당하게 한다. 그러면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벼움 속에 풍부하고 자유로운 감성적 감정과 상실의 우울함이 내재되어있으며, 시간의 개념이 가장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안 페인팅’ 시리즈는 맑게 채색된 가벼운 화면을 보여주거나 짙은 점묘로 구성된 독특한 형상을 이룬다. 원작의 이미지가 다양한 변주를 거친 작업으로,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담은 작품이면서 기억과 역사에 대해, 그리고 미술에 대한 회고이자 증언이면서 탐구로 평가 받는다.

최경자 화가,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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