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장미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2주 만인 23일, 노무현·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운명이 엇갈렸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이 열린 김해 봉하마을은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 신분으로 추도식장을 찾기로 하는 등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데 이어 뇌물혐의 재판을 받기 위해 수갑을 찬 채 호송차에서 내린 뒤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피고인 신세로 전락했다.

이날은 노 전 대통령에게는 하늘에서나마 서거 8년 만에 정권교체의 기쁨을 맛본 환희의 날이 된 반면, 박 전 대통령에게는 치욕으로 기록된 날이 됐다.

두 전직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13년 전인 2004년 5월 13일 탄핵 기각으로 대통령직에 복귀한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10일 탄핵 인용으로 최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런 상황 탓에 두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의 표정도 확연히 엇갈렸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문 대통령을 정점으로 추미애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김해 봉하마을의 8주기 추도식장에 총집결했다. 2007년 대선 참패 이후 스스로 ‘폐족(廢族)’임을 선언한 친노(친노무현)를 포함해 민주당의 화려한 부활을 확인하는 장이자 9년 만의 정권 탈환에 성공한 문 대통령의 ‘당선신고식’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출신인 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뭔가 숙제 하나를 해결했다는 느낌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낸 분들이 응어리가 많을 텐데 이제는 그런 응어리를 푸는 관점이 아니고 노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을 우리가 새롭게 시작해 이뤄나가는 계기로서의 추도식이 됐으면 좋겠다”며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오늘 문 대통령)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반면 한국당의 표정은 침통함 그 자체다. ‘1호 당원’인 박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첫 대통령직 파면으로 불명예 퇴진한 데다 뒤이은 대선에서도 역대 최대 표차로 패배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

더욱이 7월 새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고질적 병폐인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간 계파 싸움이 재연되면서 당 내부의 권력투쟁에 빠져드는 양상마저 보인다.

한국당은 봉하마을 추도식에 당 대표 대신 박맹우 사무총장을 보냈고, 당 차원의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에 대해서도 다른 당과 달리 공식 논평 없이 침묵했고, 친박계 의원들도 법원이나 구치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원내대책회의에서 “전직 대통령이 탄핵당해 구속되고, 재판을 받는 것 자체가 우리 헌정의 불행이고 재현되지 않아야 할 비극이다. 재판만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김재득·나은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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