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 STORY] 안성 칠장사 주지 지강스님

때이른 무더위로 마치 한여름으로 착각하게 만든 지난 22일. 1천400년 역사를 가진 사찰로,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하는데 일조를 한 안성의 칠장사를 찾았다.

칠장사로 올라가는 고즈넉한 길은 마치 자연의 품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양옆으로 길게 뻗은 가로수는 불자들과 손님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줬고 그 옆에는 칠장사에서 직접 키우는 각종 채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시원한 처마 그늘에 누워, 아무리 불러도 귀찮은 듯 고개만 슬쩍 들어보는 칠장사의 경비견 차우차우를 지나, 들어선 대웅전 앞마당에는 주지스님인 지강(志剛)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가 가득했다.

나눔과 소통으로 안성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는 지강스님의 목표는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아직 모두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날이 올 때까지 스님은 지속적으로 나눔을 베풀 계획이다.나눔과 소통으로 안성지역을 보듬고 있는 지강스님(60)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법을 들어봤다.

-칠장사는 어떤 곳이며 역사적으로는 어떤 역할을 해왔나.


“칠장사는 1983년 9월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다.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시대 1383년(우왕 9)에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역대실록을 이곳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389년(공양왕 1)에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된 것을 조선시대 1506년(중종 1)에 흥정이 중건했고 1623(인종 1)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아 크게 중창했다. 1674년(현종 15) 권력자들이 장지로 쓰기 위하여 사찰을 불태웠으나 초견이 다시 중건했고, 1694년(숙종 20)에 다시 불에 탔으나 1704(숙종 30)에 석규가 대법당과 태청루 등을 지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선진이 원통전을 세웠다. 1726년(영조 2), 1751년(영조 27)에도 약간 이축·증축했고 1877(고종 14)과 이듬해에 중건했다. 대웅전, 사천왕문, 원통문, 명부전, 나한전 등을 비롯해 12동의 건물이 있으며 국보296호인 오불회괘불탱을 비롯, 혜소국사탑,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혜소국사는 속성은 이씨이며 이름은 정현인데 안성에서 출생해 10세 때 광교사 총회에게서 구법하고 17세에 영통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8세에 왕명에 의해 대사가 됐으며, 칠현산에서 아란탑(阿蘭塔)을 세워 홍제관이라 하고 좌선했다. 1054년 83세로 입적했다. 혜소국사가 칠장사에 왔을 때 칠장사는 도둑들의 소굴이었다고 한다. 그 도둑들을 교화시키는 과정에서 혜소국사는 평범한 표주박이 도둑들의 눈에 금표주박으로 보이게 했고 결국 도둑들은 혜소국사에 교화돼 도를 깨달아 나한(羅漢)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에도 칠장사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혜소국사가 칠장사에서 1054년 입적한 후 550여 년 뒤에 발생한 임진왜란 때, 칠장사가 왜구에 의해 분탕질을 당하자 혜소국사가 현신해 왜장을 혼내줬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온다. 또 문종의 넷째 아들이었던 대각국사 의천은 혜소국사가 입적한지 30년 후에 칠장사에 와 혜소국사의 영전에 참배하고 시를 지어 바친 일도 있다.”

-‘나눔과 소통으로 향기 나는 세상(나소향)’을 강조하고 계시는데, 일반인들이 그 가르침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우선은 자신이 근면, 성실하게 잘 살면 된다. 모든 범죄들은 부족함이나 욕심 등에서 발생하기 마련인데 내가 잘 살면 주위에 피해를 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된다. 주위에는 아직도 배고픈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눔을 하다 보면 자신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나라가, 누군가가 나에게 뭘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요즘에는 다양한 복지가 있는데 누구나가 다 받길 원한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 양보를 해준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지금 대통령의 공약 중에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 있는데 요즘에는 공장을 가더라도 기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대부분 회사 임원, 간부들의 월급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월급을 낮추고 신입사원들을 채용하는 나눔을 실천한다면 진정한 행복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 ‘나소향’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더니 황은성 안성시장을 비롯한 시·도의원들도 가끔 이야기를 꺼내신다.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색채가 없고 꼭 우리의 삶 속에 필요하기 때문에 안성에서는 유명해졌다.”

-나눔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시는데 어떤 나눔들을 해오셨나.


“2007년 3월 주지로 부임하면서 지역사회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이 많았다. 생각한 것이 나눔과 소통이었다. 나눔을 통해 소통하고 더불어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길 기대한 결과물이었다. 나눔과 소통으로 정해지니 일이 착착 진행됐다. 인근 초·중·고등학교와 지역 내 노인요양시설에 매월 100만 원씩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어르신들의 생일잔치를 열어 주는 등 지역사회에 행복을 전달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도 행복해진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시에 800가마를 전달했고 안성시민장학회에도 올해까지 4천만 원을 전달했다. 또 안성에 위치한 하나원에 매월 200여 명에게 이불을 전달하고 있다. 나눔이라는 것이 조금만 소홀하면 ‘한번 했으니까 안해도 되겠지?’라는 마음이 들게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약속을 해버린다. 시에 쌀 1천가마, 장학회에 5천만 원을 약속했는데 내년이면 모든 약속을 지키게 된다.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또 약속을 할 것이다. 생각나는 나눔 중에는 3년 전쯤에는 안성 출신 농아인이 미국에서 개최되는 세계장애인미인대회에 나가게 됐는데 비용이 없어 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수소문해 300만 원을 보내준 적이 있다. 장려상을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일로 많은 용기와 희망을 얻어 김포공항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성경찰서의 경승실장을 하다 보니 많은 사연을 접하게 되는데 지난해 비행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원을 하게 됐다. 이 학생은 중학교 자퇴 후 방황하다, 마음을 다잡고 검정고시를 봐 올해 한국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에 입학한 것이 기특해 입학비를 대주고 석가탄신일과 상·하반기에 100만 원씩 전달하고 있다. 이제는 기부문화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기부금을 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고 기부를 받는 곳에서는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 자율적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진정으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칠장사를 찾는 불자들도 많은 깨달음을 얻고 돌아가실 것 같다.

“나눔은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한 번에 많이 한다고 해서 다음은 없는 경우가 많이 때문에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낸 것이 기부 통장이었다. 안성시의 15개 읍면동에 100만 원씩 넣은 통장을 전달했는데 이유가 그 통장에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칠장사의 불자들도 그 기부통장에 후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절을 찾는 사람들은 제가 후원을 하면 ‘지강스님이니까 또 후원을 하신다’며 당연하게 생각하신다. 후원을 할 때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시는데 이런 분들의 나눔이 없었다면 저 역시도 나눔을 실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는 배달부다. 칠장사를 찾는 불자들이 후원을 해달라고 맡긴 것을 전달하는 배달부다. 지강 배달부는 배달 사고가 없기 때문에 맡겨주시는 것 같다. 나라도 국민들이 낸 세금을 목적대로 사용한다면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스님의 목표가 있으시다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정부나 도, 시 등의 지원이 아니라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후원을 받아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형편 때문에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와서 마음껏 한 끼를 먹을 수도 있지만, 꼭 그런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가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하는 사랑방과 같은 급식소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안성시 죽산에서 한 달에 1번 중국집을 빌려서 자장면을 베풀고 있는데 특별히 대상을 선정하지는 않고 오는 모든 이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이 날은 사람들이 ‘칠장사 장날’이라고 부를 정도로 찾아주고 계신다. 칠장사의 식사 나눔은 약 1천 년 전부터 시작됐다. 고려때 안성 출신인 혜소국사(972년~1054년)는 굶주린 이들을 대접하며 신분을 초월해 부처님의 법을 펼친 분이다. 오늘날 강조되는 나눔을 이미 천년 전에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칠장사를 중창했고 다양한 전설 속 주인공이다. 그분의 뜻을 이어 안성시민들과 칠장사는 찾는 분 등 모두가 굶지 않도록 하겠다”

김동성기자/사진=노민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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