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추진을 시사했다. “(그때까지) 합의된 사항만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의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어떤 형태의 개헌이 이루어질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지만,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4년 중임제 개헌을 하더라도 다음 대선은 5년 후에나 있을 것 같다. 대통령도 후보 시절 개혁을 하려면 5년의 임기도 짧다고 언급해 임기단축 가능성을 일축했고, 현행 헌법 제128조는, “대통령의 (중략)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약준비, 1년을 넘지 못해

5년이나 남은 대선에서 필요한 정책공약들은 언제부터 준비하는 게 옳을까? 6개월 전? 1년 전? 아니면 2년 전? 모두 틀렸다. 보수우파든 진보좌파든 중도저파든 대선공약은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옳다. 선거가 5년이나 남았는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반문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각 대선 캠프에서의 공약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안다면 이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거다.

이번 제19대 대선은 탄핵으로 인해 짧은 준비기간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지만, 그동안의 정상적인 선거조차도 공약 준비 기간은 1년을 넘지 못했다. 아니, 실은 그보다 더 짧은 기간에 대선 공약이 만들어지곤 했다. 대선 6개월 전 쯤 각 당의 경선 예비후보자 등록기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캠프가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정책이란 것이 외교안보, 경제성장, 복지 등등 얼마나 폭이 넓고 깊이가 깊은가? 6개월 내지 1년은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전문가 보다는 폴리페서들의 주장이 채택

캠프 구성도 늦을뿐더러 그 구성원도 문제다. 예외도 있겠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은 몸을 사리고 캠프 참여 후 공직진출을 꿈꾸는 부나방 같은 폴리페서들이 많이 모이는 게 상례다. 정책 분야별로 한두 사람의 강한 주장이 있으면, 제대로 검증도 못해보고 공약으로 채택되는 게 보통이다. 물론 대선 토론 과정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일부 수정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냥 간다. 공약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직업공무원들조차 조그마한 반대의견 조차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자칫하면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 그랬던 것처럼 ‘영혼없는 공무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각 진영을 대표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치열한 내부 토론을 통해 각자의 정책을 정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1년에 한두 번이라도 각 진영 대표선수들이 나와 서로의 정책을 교차검증하는 토론회도 열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보수, 진보, 중도를 대표하는 정책연구소가 만들어져 상시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다수의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엉터리 정책들은 대선 전에 일찌감치 걸러지고 어느 쪽이 집권하더라도 색깔은 조금 다를지언정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지 않는 정책만 공약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선진국은 진영별 정책연구소에서 상시 토론

선진국의 경우, 보수/진보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크게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책공약은 나오지 않는데, 그 주된 이유는 정책연구소의 존재 덕분이다. 미국의 예를 봐도, 보수측에는 연 4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는 헤리티지 재단을 비롯한 수십 개의 연구소들이 있고, 중도측에는 연 500억원을 투입하는 브루킹스 연구소를 필두로, 진보측에는 미국진보센터를 중심으로 수십개의 연구소가 포진해 있다. 이들 연구소들이 연중 주요 정책의제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기 때문에 완전히 말도 안되는 정책들은 사전에 걸러지고, 막상 선거가 벌어지게 되면 비교적 검증된 공약들이 제시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진영별로 제대로 된 정책연구소가 없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당의 민주연구원이나 야당의 여의도연구원 모두 본격적인 정책연구소라기 보다는 각 당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거나 여론조사를 주로 관리하는 곳이다. 게다가 정당 소속이라는 한계 때문에 구호와 포퓰리즘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진영별 대표선수들 지금부터 토론해야

정책연구소에 대한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헤리티지나 브루킹스, 미국진보센터 같은 대형 연구소가 당장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각 진영을 대표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더 이상 숨어서 눈치보지 말고 전면에 나서 5년간의 정책토론을 해야 한다. 그 길만이 대선공약이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지 않게 하는 길이요, 대선이 우리 아이들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길이다.

박수영 아주대 초빙교수, 전 경기도 행정1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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