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라는 대기업이 이럴수 있습니까? 정말 너무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자금난, 인력난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새로 출시되는 삼성자동차를 무조건 2대씩 구매하라는 지시가 내려 왔습니다. 2대를 구매하려면 가뜩이나 숨 막히는 자금난은 더욱 가중될 것 같고 구매를 안하면 당장 다음달부터 납품을 중단하라는 명령아닌 명령이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한데요.”

20년전 일이다. 필자가 K일보에서 경제부 기자로 반월공단을 비롯한 경기지역 공단을 발로 열심히 뛰어 다닐때다. 나름대로 중소기업의 가려운 부분을 많이 긁어 줬다는 자부심이 있을 때였다. 평소 ‘호형호제’하면서 친밀하게 지내던 반월공단에 있는 중소기업 CEO가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점심을 하던 자리였다. L사장은 한탄하듯이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불만을 터트렸다. 짐작하듯이 L사장은 삼성전자의 협력업체 였다. 당시는 삼성그룹에서 삼성자동차가 처음 출시될 때였다. 삼성은 협력업체들에게 2대씩 삼성자동차를 구매하라고 강매를 시킨 것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갑질중의 갑질이다. ‘초대형슈퍼갑질’인 셈이다. 회사로 복귀해서 데스크에 보고를 하고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편집회의에 참석했다 나온 데스크는 나에게 “그 기사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단 한마디만 했다. 현장 취재기자에게 왜 보도가 안되는지 부연 설명도 없었다. 결론은 ‘삼성 로비력은 막강했다’ 였다. 현재도 삼성의 협력업체 주변에서는 연말만 되면 다음해 납품단가 후려치기 때문에 CEO들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반올림(삼성전자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 인권지킴이)에 따르면 올해 1월 14일 삼성반도체화성공장에서 근무했던 김기철(32)씨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김씨는 삼성반도체·LCD 노동자로는 79번째, 백혈병 환자로는 32번째 사망자다. 김씨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삼성은 재판부가 요구한 김씨의 업무환경에 관한 자료를 1년 6개월 넘게 제출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문서제출 명령에 “지방고용노동관서가 판단할 문제”라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소송이 제기되고 2년 동안 자료제출 공방만 이어지면서 김씨는 결국 사망했다. 삼성 백혈병 논란은 2007년 3월 황유미(당시 22세) 씨의 죽음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황 씨의 죽음 이후 2007년 11월 반올림이 발족했다. 반올림은 황 씨 사망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전자·전기 계열에서 백혈병, 뇌종양, 유방암, 자궁경부암, 피부암 등을 호소하며 반올림에 신고한 피해자 수는 160명이고, 이 중 약 60명은 사망했다며 삼성의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그간 백혈병은 직업병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2011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 이숙영 씨 등 두 명에 대해 처음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2012년 4월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5년 5개월 근무한 후 혈액암에 걸린 김 모(당시 38세)씨의 질병을 처음으로 산재로 승인했다. 삼성은 여전히 산업재해 인과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삼성은 산업재해는 우리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삼성이 조금만 솔직해지면 벌써 끝났을 일이다.

지난해 8월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은 판매 초기 배터리 폭발 신고로 곤욕을 치렀다. 삼성은 발빠르게 전량 리콜을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악몽이 끝나지 않았다. 교환품 배터리 역시 잇따라 폭발했다. 결국 삼성은 출시 두 달 만에 갤럭시노트7 생산을 중단했다. 이 사태로 삼성은 약 3조원, 리콜비용까지 합산하면 4조원의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디스플레이나 배터리, 각종 부품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그룹 내 계열사들이 입은 피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큰 손실은 역시 삼성의 이미지 타격이다. 글로벌기업의 이미지 훼손은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어서다. 이렇게된 근본적 원인은 뭘까? 삼성의 ‘지나친 실적주의’와 ‘속도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적에 근거한 인사원칙주의와 가장 단기간에 경쟁사를 능가하는 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미세한 실수를 막지 못했다. 입사후 승진심사에서 단한번도 탈락한 적이 없는 최고 엘리트 부사장급 임원이 승진서 처음으로 탈락하자 7년전 아파트서 떨어져 자살한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그룹은 창사 이래 최초로 그룹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됐다. 뇌물공여 등의 혐의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주식 처분 등 경영권 승계 작업 전반에 정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기에 힘을 써 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를 통해 대가를 받았다. 여기에 국민들이 공분하는 것은 합병과정서 국민연금의 찬성결정에 외압이 존재했고, 그 결과 국민연금이 큰 손실을 입었다.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피땀어린 노후자금이다. 이 돈이 정유라의 말을 구입하는데에, 이 부회장 일가의 편법적인 경영승계작업 지원에 악용됐다는 것은 분노를 넘어 참담함마저 자아내게 했다. 삼성은 글로벌기업이며, 한국의 대표기업이다.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직장이다. 삼성도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버팀목은 국민이었다. 국민들은 삼성의 두 얼굴 중 밝은부분만 보기를 원한다.

표명구 경제부장 겸 고양담당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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