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채권의 늪 (1)피말리는 대부업 채권추심

그냥 사람답게 잘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와이프와 토끼같은 아이들, 부모님께 마음껏 효도하며 살고 싶었을 것이다.

가계(家計)에 어둠이 드리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TV만 켜면 밝은 노래와 함께 ‘여자끼리 비밀’ ‘신용조회없이 바로 대출’ 등 저마다의 사연을 이야기 삼아, 삶이 고된 사람들에게 대출을 종용한다. 때문에 뉴스에는 개인 채무 등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사는게 힘들어 잡은 썩은 동아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옥죄여오는지 점검한다.

평택에 사는 주부 한모(48)씨는 수 년전 이혼한 전 남편이 자신의 명의로 카드를 발급받아 이혼 후에도 계속 사용해 와 연체금 독촉에 시달렸다. 2015년 4월 현재의 남편과 어렵게 결혼한 한씨는 새 남편에게 말하지도 못한 채 혼자 끙끙 앓던 중 TV에서 대부업체 광고를 보고 수화기를 든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200만 원을 빌렸는데 지금은 갚아야 할 돈이 5배인 1천만 원이 돼버린 것이다.

한씨는 “생활비를 아껴서 갚으려 했는데 아이들은 자꾸 커가고 들어갈 돈이 많다보니 빚이 눈덩이가 됐다”라며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될까봐 하루 하루가 조마조마 하다”라고 말했다.

수원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는 김모(32)씨는 대학 생활 4년간 학자금 대출을 받아 약 2천만 원의 채무가 있었다. 취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 돈을 빌린 탓에 6건의 신용대출이 생겼다. 김씨는 월 150만 원의 수입이 있기는 하지만 이자를 갚는데만 100만 원이 넘게 들어갈 뿐 원금 상환은 꿈도 못꾸고 있다. 나중에 직장이나 집으로 추심원이 찾아올까봐 또 다른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

TV의 대출광고는 대상을 세부적으로 나눠 대상에 맞는 탁월한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다. 여성들에게는 ‘아무도 모르게’라는 콘셉트로, 젊은 직장인에게는 어렵지 않게 선택할 수 있는 사소한 사치로 다가가며 빚을 부추긴다.

24일 한국대부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자 3천2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2%가 TV 광고를 통해 대부업체를 알게 됐으며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광고를 통해 알게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17%와 6%에 그쳤다. 하루 평균 757건 꼴로 TV를 통한 대부업 광고의 위력이 2위인 인터넷과의 격차를 35%로 벌린 것이다.

한국대부금융협회는 TV광고 등을 통해 성인 약 43만 명이 총 24조1천억 원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데에는 사업자금이 48.8%로 가장 많았고 가계생활자금(36.1%), 대출금 상환(10.2%) 순으로 나타났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또 다시 대출을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계빚이 올 1분기에 17조 원가량 늘어 1천360조 원에 이르렀다. 가계빚 증가 속도가 다소 둔화됐음에도 전 분기 대비 증가액 17조 원은 1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2번째로 큰 규모다. 저성장과 금리인상 우려, 경제 불확실성 등은 가계의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이는 10년째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이어가고 있는 비극의 배경에는 빚독촉에 의한 비관도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서민 가계경제의 위축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불법 사금융 이용실태를 파악해 나갈 것”이라며 “회원 대부업자의 음성화를 방지해 서민들이 대출 빚더미에 앉지 않도록 대책 등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성기자
▲ 사진=연합(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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