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채권의 늪 (2)죽은 듯 죽지않는 좀비채권

#안양에 사는 이모(44·여)씨는 이혼한 남편이 자신의 명의로 자동차 담보 대출을 받은 연체이자를 독촉하는 대부업체 때문에 피가 마를 지경이다.

15년 전 전 남편이 자동차를 담보로 받은 대출은 450만 원인데 빚이 연체이자까지 붙어 1천600만 원이 돼 날아온 것이다.

자동차는 이미 캐피탈 회사에서 담보권을 실행했지만 그동안 전 남편이 담보대출뿐만 아니라 할부금도 제대로 갚지 못해 담보 대출 원금이 고스란히 남아버린 것이다.

이씨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돈은 캐피탈에서 빌렸는데 독촉은 대부업체에서 해오는 것이다.

#파주에 사는 주부 김모(57)씨는 1999년 남편이 하던 자동차 부품 도매상이 망하며 길거리에 나앉았다. 사업을 시작할때 김씨가 연대보증을 섰는데, 외환위기 이후 거래처가 줄도산하면서 남편이 자금 회수를 하지 못해 빚쟁이 신세가 된 것이다.

이후 남편과 이혼하고 13년간 아이 둘을 키우며 악착같이 돈을 벌어 남은 빚을 청산해 아이들과 마음편히 살아보는가 싶었는데 한 은행으로부터 1990년대에 대출을 받았던 550만 원을 갚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이 대출을 받을 때 보증을 서며 생긴 채무 중 일부가 계속 여기저기 팔리면서 집요하게 김씨를 따라다니고 있던 것이다.

소멸된줄 알았던 금융권 대출 채권이 다시 살아돌아와 힘든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권시효가 끝난 일명 ‘죽은 채권’이 비일비재하게 거래되면서 없는 서민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신용 불량자가 되면 금융 거래가 불가능해지고 취업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되다 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갚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실제 지난 2010년 이후 5년간 금감원에 등록된 162개 금융회사가 4천억 원대 죽은 채권을 120억 원에 대부업체에 팔아넘겼다.

금융권 대출 채권의 소멸시효는 통상 연체 시작일로부터 5년인데 금융회사들이 조금이라도 돈을 받기위해 이런 채권의 약 5% 정도만 받고 헐값에 자산관리공사나 대부업체 등에 팔아넘기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채권을 산 대부업체들은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채무자들에게 10원이라도 변제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소멸시효를 계속 연장시킨다.

이같이 죽은 채권을 사고파는 행위를 강제로 규제하는 내용의 법이 마련돼 있지 않고, 헐값에 사들인 채권의 원금만 받아내기만 해도 남는 장사기 때문에 죽은 채권만 사들여 추심하는 업체까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 같은 금융시스템은 채권에 녹아있을 서민들의 사정은 무시한 채 오로지 액면가와 현금화 가능성만 평가해 빚을 갚지 못해 겪는 고통을 하나의 상품으로 물질화해 부담을 배가시키고 있다.

한 금융업체 관계자는 “죽은 채권은 소멸시효가 있음에도 대부업체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속이거나 협박까지 동원해 소멸시효를 연장하면서 돈을 받아낸다. 그래도 돈을 갚지 않는다면 또 헐값에 다른 대부업체에 팔아넘기는 등 서민들의 고통이 하나의 상품으로 계속 돌아다닌다”며 “채권에서 소멸시효가 있다는 것을 숙지하고 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개인회생 등 여러 제도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 중 한 가지”라고 말했다.

김동성기자

▲ 사진=연합(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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