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告白)을 칼럼 소재로 쓰는 게 적절한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가정사가 나오고 벌거숭이가 될수도 있겠지만 오늘 쓰지 않으면 앞으로도 쓸수 없을 것 같아 쓰기로 했습니다. 37년 동안 가슴속에서만 간직하며 속앓이 했던 ‘5월 광주’ 이야기입니다.

1980년.부모님이 광주 서석동 사거리에서 슈퍼마켓을 했습니다. 말이 슈퍼마켓이지 구멍가게 입니다. 도회지 고등학교로 유학나온 아들을 뒷바라지 하기위해 고향에 있던 전답 팔아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얻은 것입니다. ‘삼양슈퍼’. 주변에서는 나를 삼양슈퍼집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대학교와 멀지않고 전남도청,전남대학병원,세무서, 재수학원 등이 몰려 있었습니다. 독재타도와 민주를 외치던 시민들이 집결했던 5월 광주의 중심지와 지척이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5월 광주를 목도(目睹)했습니다. 동이 트는 새벽 대로변에 움츠리고 앉아 있던 시민에게 총을 쏘던 군인을 잊을수 없습니다. 친척집에 피신해 있다 동생들과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맞닥뜨린 공수부대원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어린 동생 손을 잡고 도망갔던 동명동 막다른 골목. 진압봉을 치켜 들고 쫓아오던 군인들의 군화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조여오던 공포를 잊을 수 없습니다.

5월을 보내며 37년 동안 가슴속 깊이 숨겨 놓은 5월 광주의 아픔을 새삼스럽게 꺼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5.18 기념사를 들으며, 망월동에 운집한 그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모습을 보고서, 가슴 한켠에서 떠나지 않았던 아픔과 고통을 보내기 위함입니다.

2017년 5월은 역사에 기록될 사건이 유독 많았습니다. 국정농락 사건으로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서 사상 초유의 대통령 보궐선거를 치렀습니다.

수갑을 차고 법정에 나온 전직 대통령 모습도 지켜봤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법정에 서게 된 전직 대통령입니다. 본인에게 이보다 더한 불명예가 없겠지만 수갑 찬 수인번호 503호의 박근혜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도 착찹한 심정이었고 고통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석에서 재판을 받은 날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추모객이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에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추도식을 보면서 ‘친노·친문’이라는 진영 울타리를 넘어 이제 통합의 길을 가야 하고, 전직 대통령의 불행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文)대통령에 대한 국민 기대가 높습니다. 시중에는 박 전대통령과 반대로만 하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을 것이라는 우스개 말이 있습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해서 ‘허니문’ 기간인 탓도 있지만 취임후 보인 광폭행보와 측근들의 2선 퇴진,야당·언론과의 활발한 소통, 탕평인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기 때문이겠죠. ‘이게 나라냐’는 불신이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기대감과 우호적 여론으로 돌아선 결과겠지요.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박 전대통령 탄핵과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갈라지고 찢긴 민심을 치료하고 부둥켜 안고 가야합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한 번도 경험하지 못 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필요조건이고,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장미넝쿨 우거진 5월을 보내며 37년전 5월과 같은 불행한 역사도, 수갑찬 전직 대통령의 5월도 마지막이길 소망합니다.

김광범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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