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31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가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전공이 뭔지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
해외도피 생활을 끝내고 245일만에 입국한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딸 정유라(21)씨는 담담했다.

정씨를 태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발 대한항공 KE926편은 31일 오후 2시 38분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다른 승객들이 모두 나오고 약 20분이 지나도 정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관검사와 검역, 입국심사 등 입국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비행기 안에서 따로 받았기 때문이다.

착륙하고서 40여분 가까이 지난 3시 16분에야 정씨는 27번 입국게이트에 모습을드러냈다. 지난 겨울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이 한국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베이지색 바지에 회색 운동화, 연두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정씨는 굳은 표정으로수갑을 찬 채 취재진 앞에 섰다. 수갑은 파란색 수건으로 가려져 있었다.

정씨는 약 6분간 이어진 취재진의 질문에 대체로 성실하게 답변했다. 모든 질문을 피하지 않고 답했다.

담담하게 답변을 이어가던 정씨는 '(이화여대에서) 입학 취소된 것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저는 한번도 대학교에 가고 싶어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입학취소에대한 것은 드릴 말씀이 없고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대학에 입학한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아직 해외에 체류 중인 아들과 관련한 질문에도 정씨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눈을 여러번 깜박였다.

정씨는 과거 '돈도 실력이다'라는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글이 뒤늦게 인터넷에 퍼지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이에 대해 '국민에게 한말씀 하라'고 하자 정씨는 "어린 마음에 썼던 거 같은데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며 울컥했다.

정씨는 다른 승객들처럼 세관·출입국·검역(CIQ) 지역을 통과하지 않고, 입국 게이트 아래 계류장으로 가 검찰 차량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검찰 수사관과 공항경비대원 10여명이 철통 호송을 펼쳤다.

계류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정씨의 모습을 보려고 입국게이트 앞에 30여명의 이용객·항공사 직원들이 몰려들었다. 일부는 휴대전화로 그의 모습을 찍기도 했다.

정유라씨가 다른 경로로 공항을 빠져나간다고 사전에 알려졌지만 KE926편 승객이 나오는 B입국장에도수십명의 기자들이 진을 쳤다. 정유라씨가 예정과 다르게 움직이더라도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 매체는 높은 곳에서 출국장 전경을 담고자 지미집 카메라를 동원하기도 했다.

오후 2시께부터는 청년당과 대학생당 소속이라는 남녀 4명이 출국장 앞에서 피켓팅을 벌였다. 이들은 '경축 유라귀환', '정유라를 구속수사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었으며, 청년당 소속 남성 2명은 말 가면을 썼다.

2시 30분께는 대학생당 대표 김유정(22)씨가 말 가면을 쓴 청년당 소속 남성에 업혀 "정유라를 구속하라"고 외치는 퍼포먼스도 했다.

김씨는 "삼성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지원을 받는다는 점 등을 정씨가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일부 사람들이 딸(정씨)이 무슨 죄가 있냐고 하지만 정씨도(비리 앞에) 침묵했고 도피했다"고 말했다.

정씨가 탄 비행기 도착시간이 가까워 올 수록 B입국장 인근에 모인 시민들은 늘었다. 다른 비행기 승객들이 입국장에서 벗어나는 길을 만드느라 공항 보안요원들이바빠졌다.

출국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보도와 휴게공간에서도 수백명의 시민들이 난간에 기대 정씨를 기다렸다.

오후 3시 30분께 정씨가 다른 경로로 공항을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출국장 앞 시민들은 허탈하게 웃거나 일부는 '아이씨'라며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정씨와 같은 항공편으로 귀국한 승객들에 따르면 그는 비행기 안에서도 감정의 기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차분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모(45)씨는 "사람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그러더라"면서 "나 같으면 고개를 숙이거나 (모자를) 뒤집어쓰거나 했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고 잠도 잘 자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친구들와 여행한 안모(48·여)씨는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이더라"면서 "정씨와 눈을 마주쳤는데 내가 먼저 눈을 돌리게 되더라. 고개를 빳빳이 들고 주변을 쳐다봤다"고 했다.

한 승객은 "(정씨가) 밥은 안 먹고 커피만 마시는 것 같았다"고 했고 정씨 자리인근에 앉았다는 김보경(50·여)씨는 "제가 볼 때는 눈을 내려깔고 '아휴'하고 한숨쉬는 것이 들렸다"고 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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