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정보 처리 소자의 키워드는 트랜지스터였다. 진공관으로 만들어진 집채만한 컴퓨터의 등장 이후 컴퓨터의 질적 변화를 알리는 반도체 시대의 서막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집적회로의 시대였다. 연구용에 머물렀던 트랜지스터를 실리콘 웨이퍼에 집적시키는 기술이 꽃피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컴퓨터는 과학기술 전문가들에 의해 가동되는 거대한 시설이었을 뿐 일반인과는 동떨어진 무엇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키워드는 ‘퍼스널’로 변했다.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일반화를 통해 1인 1컴퓨터 개념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컴퓨터는 일반인의 것이 되었다. 이것은 정보산업이 IBM과 같은 거대 기업이 아니라 개인의 기업의지와 창발성을 통한 벤처 창업과 초고속 성장 모델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판검사, 의사, 공무원이 되려고 발버둥칠 때, 미국에서는 정보산업의 젊은 기업가들이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시대 변화를 알리는 영건이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인터넷 시대가 개막되었다. 본디 제한된 연구시설 내의 통신 수단이었던 인터넷 개념은 퍼스널 컴퓨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비로소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낯선 감정선이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2000년대의 키워드는 모바일이었다. 퍼스널 컴퓨터는 기술 진보를 거듭하여 한 손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졌고, 고속 무선 통신망이 인프라로 깔린 사회에서 인터넷은 더 이상 통신 수단만이 아니었다. 퍼스널 컴퓨터 시대에 좌절했던 스티브 잡스는 휴머니티를 장착한 생활 필수품을 들고 권토중래(捲土重來)했다. 컴퓨터라기 보다는 애장품에 가까운 모바일 시대의 창조자였다.

사람들은 모바일을 잇는 다음 키워드를 두고 ‘유비쿼터스’니 ‘웨어러블’이니 설왕설래를 거듭하고 있다. 정보가 들어올 입구는 더 많아질테고 통신 네트워크는 더 촘촘해질테니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자료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이룰 것이다. 그러니 더 빠르고 더 수요가 높은 2차, 3차 정보를 가공해낼 기술이 필요하게 되고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은 당연히 있었어야 할 기술이었다.

한 사람의 과학기술 연구자로서 작금의 4차 산업혁명 소동을 보면 씁쓸함을 뒤로 하기 어렵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지금 이 시간도 지속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을 따름이다. 결코 ‘갑툭튀’가 아니다. 오랜 지적 노고의 부산물일 진대, 깊고 먼 통찰도 없고 자기 희생의 각오도 없이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좇으려는 선무당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우리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학원가를 돌며 벼락치기 시험 준비로 성적을 좀 받으니 그게 진짜 자기 실력인 줄 아는 학부모와 그들의 자식 같다.

또다시 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되고 있다. 언론은 양은 냄비처럼 일회용 기사 더미를 쏟아내고, 정치권은 듣기 좋은 말잔치를 벌이며, 공무원들은 뒤치다꺼리를 맡아 면피에 급급한다. 이제 일부 과학기술자들도 경험이 쌓여 적절히 맞장구를 치며 포장을 도와주고 이리저리 떨어지는 떡고물을 얻어먹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각자에게는 최선일지 몰라도 우리 사회 전체에게는 해악이다. 악순환의 고리는 단칼에 끊기 어렵다. 그마저도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치며 일관된 기조를 견지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값진 결실이다. 어느 하나도 시간과 인내, 지적 깊이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물적 토대는 사회적 토대를 바꾸고 사회적 토대는 인간 생활과 문화를 바꾼다. 그렇기에 과학기술에서 반걸음 앞서면 사회 구조에서는 십리를 먼저 가게 된다. 종국에는 문화의 기저마저 점유하여 시대를 주도하게 된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영국의 모국어가 세계의 공용어가 되었고 영국의 기준이 대다수 세계 표준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대영제국은 저물었지만 그들의 후손은 다른 형태로 그 축복을 여전히 누리고 있다.

경기도와 같은 지자체가 수월성 있는 과학기술과 깊이 있는 연구개발에 장기간 안정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은 결코 당장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지역사회의 지식 토대를 구축해나가기 위함이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할만한 혜안과 신념이 필요하다. 개별 기술이 아닌 그들의 융합과 연결에, 지역주민들의 과학문화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인과 공직자, 언론인이 무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정택동 서울대 교수, 융기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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