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하는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잇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상생의 원칙이 담겨 있다.

상생의 본질은 또 다른 협동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공동운명체의 실상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첫 방문지로 찾았던 인천공항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보장에 대한 이야기가 화자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비정규직들이 겪은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근로자가 직업병인 ‘메탄올’ 급성중독 치료를 받다 끝내 숨졌다는 이야기는 천대와 차별 속에 참아왔던 이 땅의 비정규직들에 대한 애환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다.

기회와 균등, 평등이 사라진 파견 업체 근로자를 지칭하는 ‘아웃소싱’, 이란 ‘원청’ 업체 계열 소속 하에 일하지만 실상은 노예나 다름없다.

산업 현장마다 어김없이 하도급 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위험한 3D 업종에서 일하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까운 생명을 잃는다. 그때마다 ‘아웃소싱’ 노예 비정규직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사고가 일어나면 비정규직들의 권리는 무산되고, 원청은 무죄로 판명 나 면죄부를 받는다.

이에 분노한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노동건강연대’를 결성하여 상대해도 그때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이것이 오늘 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근로자가 ‘비열’을 느낄 때는 신성한 노동의 의미가 짓밟힐 때이고, ‘치졸’이라는 말이 뼈아프게 파고 들 때는 그들의 삶의 의욕마저 상실할 때다.

차별로 인한 노동시장의 갈등이 이 땅의 정의를 무너뜨리면서 또 다른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원인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인지해야 한다.

비정규직들이 말하는 ‘원하청공화국’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공동운명체의 본질인 상생을 거부하며 존재의식 마저 팽개쳐버리는 죄 없는 비정규직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고질적 병폐는 사라져야 한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은 그래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윈칙과 상식이 통하고 모두 공평하게 잘 사는 나라를 바라는 것이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이 기회에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의식이 바로 서고, 생존문제가 걸린 신성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권리장전’(權利章典)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끝없는 ‘아웃소싱’ 노예로 남게 할 것인가.

‘원하청공화국’이라는 ‘오명’(汚名)을 불식시키는 나라가 나라다운 모습을 갖추려면, 신성한 근로자들이 평화롭게 똑 같이 일하고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 때 그것이 나라다운 참 모습이다.

시대불문하고 노동의 이름을 신성하다고 한 것은, 인간 생존 법칙 중 상위개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김종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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