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 성장의 기조였던 ‘창조경제’는 실체가 모호했다. 대략 ‘융합’을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로 설명되는 분위기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화두가 됐던 ‘4차 산업혁명’도 지금까지는 ‘창조경제’와 비슷한 느낌이다. 향후 5년간 문재인 정부 국정 기조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될 ‘4차 산업혁명’이 창조경제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당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과학기술부를 부활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가가 4차 산업혁명의 성장을 주도하고 민관이 협력해 인공지능(AI)과 3D 프린터, 로봇공학 등 핵심기술 분야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대로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신성장동력 및 일자리 창출의 기반으로 삼아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자 화두인 4차 산업혁명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크게 두 가지다. 실체가 모호하다는 것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을 디지털 세계와 인간의 삶을 접목시켜 인간에게 최적화된 생활의 질을 제공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핵심기술은 인공지능. 무인 자동차, 로봇공학, Iot(사물인터넷), 나노기술, 3D 프린팅 등 새로운 기술의 융합이다. 융합은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것이다. 이미 있었거나 경험했던 것도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은 개념으로서의 의미가 매우 크고 실체가 모호하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축으로 창조경제를 구현하려 했던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닮아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역할을 인공지능이 대체한다는 점에서 비용 절감, 시간 단축 등의 혁신을 추구하지만 인간이 직업을 잃는 대량 해고가 수반된다. 증기기관이 생겨나고 이를 이용한 운송기계가 늘어나면서 실업자가 양산된 이전의 산업혁명처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종의 부작용은 당연한 이치다. 물론 인공지능 전문가, 무인자동차 엔지니어 등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겠지만 창출되는 일자리 수 보다 제조업 등 기존 산업에서 퇴출되는 실업자 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일본 고베 대학 교수 마쓰다 다쿠아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으로 화이트 칼라들이 사무실을 떠나는 ‘제3의 실업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미국 포레스터 연구소(Forrester Research)는 2025년경 자동화와 로봇으로 인해 미국에서만 전체 일자리의 16%에 달하는 2천270만 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감소시켜 저소득층을 늘리는 반면, 기업들은 비용절감으로 매출이 증가해 빈익빈 부익부를 확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4차 산업혁명의 창시자 클라우드 슈밥 스위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회장은 디지털디바이스와 인간 그리고 유비쿼터스가 두루 결합한 ‘초연결사회’에 따른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그러나 혁신은 기존 환경의 파괴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4차 산업혁명은 파괴적일 만큼 강력한 기회임에는 분명하지만 양면의 칼날처럼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발표된 11조2,000억 원 일자리 추경은 실망스럽다. 대부분의 예산이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를 늘리는데 쓰인다. 민간 분야에서의 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 확대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을 4차 산업 기술자로 양성한다며 책정한 예산은 12억 원, 민간의 훈련기관을 통해 육성하게 될 4차 산업혁명 전문 인력도 400명에 불과하다. 이같은 정책이 4차 산업혁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실체와 성과가 모호했던 ‘창조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정책이 저성장을 타개할 해결책이 될 수 있음에는 분명하지만 세밀한 정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뜬구름 잡는 구호로 그칠 수 있다.

시간이 지나 후손에 의해 명명될 4차 산업혁명이 제대로 받아들여져 실생활에 접목되려면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 예산을 포함한 세부 추진계획 마련 등 철저하고도 구체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정책 또한 필요하다. 이제는 변화를 위한 변화를 꾀할 때다.

박현정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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