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집이 고정 불변적이면 발전이 없고 변화가 잦으면 전통이 사라진다는 말은 시대적 상황 인식을 깨우치게 한 말이다.

문제는 이 시대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민족주체의식’이 대립되는 과정에서 정치 갈등 편재 속에 지도자들의 자질론이 부상하며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의정부에서 미군 2사단 창설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열었던 ‘콘서트’가 불발 되면서 시민의 비난을 벗어나 국가 명예까지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 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얄팍한 발상에 혈맹의 정신을 기리고자 5억여 원에 달하는 경비를 들여가며 행사를 고집했어야 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전철 파산 선고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게 된 과오의 뭇매가 끝나기 전에 신뢰를 저버린 100주년 기념행사는 적절치 못한 행사였다.

3일 후면 2002년 미군 궤도차량에 무차별 희생된 미선 효순 의 두 여중생 사고 15주기를 앞둔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결행에 들어가 시민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하다.

정치입지 에만 몰두한 상황인식 부재에 따른 전시행정을 두고 또 다른 적폐론이 붉어지고 있는 이유다.

정치적 ‘악플’ 도 아니며 문화 ‘블팩리스트’ 치부 될 일도 아니다.

고정관념 ‘패러다임’의 틀을 깨라는 말은, 지도자의 구태적 발상 전환 인식이 변할 줄 모르는 현실을 지적한 말로 이 시대 또 다른 적폐 대상이다.

부대거리 외면한 마녀사냥이라는 볼멘소리는 역사인식 부재를 드러낸 민 낮으로, 우람한 거목만 바라보고 숲은 무시해버린 지도자의 상황인식을 결여가 낳은 ‘오만’의 극치였다.

시민들 앞에 구태 떠밀기 식 변병은 고지 탈환에만 몰두 하다 빚어진 ‘민족주체의식’의 실종이었다.

오늘도 이 땅의 자유를 수호하다 거룩한 죽음으로 산화한 ‘월링턴’ 국립묘지에 잠들은 6.25 참전 용사들은 눈물로 호소한다.

지도자의 정치놀음에 동맹의 혈관에 먹물을 주입해 자유를 테러한 독선적 무대 위에서 끝내 정치 고지탈환 하겠다는 그 야욕을 버리라고.

100주년 기념행사는 역사 인식 보은의 이름하에 약식의 거리에서 52년 주둔에 대한 우정을 재조명하는 행렬로도 끝날 수도 있었다.

민주 정의 근본을 외면한 채 치적 업적 입지 욕망을 채우기 위한 거총자세로 동원한 군림 문화 행사를 추진한 과오가 두 번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월링턴’ 용사들은 지도자가 화려한 기념을 빙자로 한 입지적 욕망을 조명탄 속에 ‘스펙트럼’화 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들이 이 땅에 자유를 찾아 주기 위해 목숨을 던진 것은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들이 투철한 역사 인식 속에 과거 동족상잔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철옹성’처럼 지켜 나가는 과정에서 보은에 대한 마음을 영원히 억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지도자들의 역사 인식 부재는 성스러운 ‘애민’정신의 근본인 ‘홍익’정신을 훼손시키는 ‘아메바’나 다름없다.

시대상황 현실진단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나머지 주체의식조차 상실한 자질 무능한 지도자의 ‘과유불급’ 한 비난의 뭇매는 피할 수 없다.

문화 ‘블팩리스트’를 거론하기에 앞서, ‘민족주체의식’을 지켜내기 위해 위대한 민주주의 제방의 정신인 ‘정의’로운 민족 ‘포퓰리즘’을 추구했어야 했다는 논리다.

이렇듯 ‘월링턴’ 용사들이 바라는 보은의 바람은 화려한 과시 전시 입지 목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역사의 ‘공든탑’을 무너뜨리지 말고 모든 국민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재조명을 바라고 있다.

머리 숙여 ‘성조기’의 깃발을 욕망의 입김으로 휘날리게 할 것이 아니라, 내일의 ‘노스텔지어’ 기억의 손수건에 혈맹의 온기를 용사들의 이름으로 아로 새기는 위대한 기념비적인 영웅으로 불려 지기를 바라고 있다.

대한민국 통일의 염원 속에 자유 민주주의 국방의 열차 무쇠 바퀴가 녹슬지 않고, ‘방산’의 철모까지 부패되지 않는 역사정신 민족정신 국민정신의 ‘방부제’ 역할을 다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김종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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