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근, 할아버지와 손자, 1964, 146x97.5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제는 그의 작품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그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에 가면 된다. 그곳에 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오빠, 집, 나무의 모습이 그때 그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난했지만 더없이 선하고 정직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박수근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변변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간난신고 속에 보내야 했던 그의 일생을 살펴볼 때, 박수근이 다다른 이런 경지는 한국 근대 미술사 속에서도 매우 경이로운 예에 속한다. 박수근은 어려움 속에서 화가로서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부단한 노력과 실험을 통해 사물과 대상의 본성을 깨닫고, 이를 가지고 세대에서 세대를 뛰어넘는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냈던 작가이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서도 아니고 어느 누구를 흉내 내어서 되는 일도 아니다. 천성적으로 화가였고 화가의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갔던 선량하고 충직했던 한 사람의,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진성성의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현실적인 소재나 과장된 주제를 다루는 법이 없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무, 집, 동물과 사람 모두는 그가 생전에 보고, 듣고, 겪은 경험의 영역으로부터 그의 화면으로 들어와 그만의 독자적인 조형적 요소로 재창조되었다.

이 작품은 박수근이 타개하기 1년 전인 1964년에 제작되어 제13회 국전에 출품되었다. 화단에서 특별한 학연이나 지연, 단체 활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던 박수근에게 국전은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워 의식해야만 하는 유일한 발표의 장이였다. 그래서인지 국전에 출품했던 작품들은 비교적 큰 사이즈의 탄탄한 구성력과 빼어난 조형성을 지닌 야심작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시기 박수근은 이미 건강이 나빠져 신장과 간에 문제가 생기고 백내장 수술의 후유증으로 한쪽 눈이 실명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최악의 조건에서 박수근은 그의 대표적 걸작인 된 이 작품을 제작했고 이듬해인 1965년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라는 말을 남기고 51세의 나이로 임종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자 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에서 자신의 목숨이 자신의 아들로, 그리고 손자로 영원히 이어지는 그런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그림 속 할아버지의 어깨는 넓고 부드러워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나머지 사람들의 모습도 정겹기 그지없다. 이웃집 아저씨들의 구수한 대화와 일 나가는 어머니들의 건강한 발걸음이 이 그림 안에 함께 있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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