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망종과 하지 사이에서 잠시 서성거려 봅니다. 보이는 곳과 눈 길 닿는 곳은 모두가 초록빛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푸르름이 가득한 터널 속을 거닐게 됩니다. 어떤 때는 방랑자처럼, 어떤 때는 구도자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삶의 무거운 보따리를 짊어지고, 때로는 기쁜 마음으로, 혹은 노여움으로, 그리고 슬픔과 즐거운 마음으로, 안개 짙은 벌판을 걸어가게 됩니다. 장미넝쿨 사이로 붉은 꽃잎들이 점점이 보입니다.

6월 어느 날,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젊은 용사들의 선혈(鮮血)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6.25전쟁이 생각나네요. 6.25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인 나는, 6월이 돌아오면 왠지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거리 곳곳마다‘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플래카드가 게첩 되어 있지만 누구 하나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질 않고 지나갑니다.

1950년 6월25일, 그리고 1953년 7월27일.

아무 이유도 없이 이데오르기의 정쟁에 휘말려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한마디 말도 못하고 무참히 죽어야 했던 우리 대한민국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 형제들, 그리고 이억 만 리 낯 선 곳, 이름조차 생소한 코리아에서 한 번도 본적 없고 알지도 못하는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방인들, 그들은 누구를 위하여 또 무엇 때문에 전쟁의 제물이 되었는지요?

점차 잊혀 가는 6.25전쟁, 아니 사변, 한국동란, 한국전쟁…

몇 년 전 미국 서부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주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주청사 한편에 설치되어 있는 기념물을 보고 놀랐습니다. 물론 가슴도 뭉클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다름 아닌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목숨을 바친 용사들의 기념비와 조각상, 부조물이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념비에는 “THE? RORGOTTEN WAR 잊혀진 전쟁”이라고 또박또박 쓰여 있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수 억 만 리 타국 땅에서 산화한 애국용사, 그들의 고귀한 삶이 헛되지 않도록 영원히 추모하는 민족정신 그리고 애국정신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의 당사자인 우리나라 현실은 어떻습니까?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의 청사를 방문해보면 이상한 축제와 행사는 많이 하고 요상한 예술품과 조각물은 수없이 설치하고도 진정으로 이 나라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6.25전쟁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애국용사와 희생 된 부모 형제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 하나 없습니다.애국선열들에게 무어라 인사를 올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겸 시인, 경기시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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