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장애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놀림과 동정을 받아 아무도 만나기 싫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사람과의 만남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더군요. 그래서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그렇게 사진을 통해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렸지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70대 사진가 이태용 씨는 25일 사진을 사랑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체장애 2급인 이씨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사람과 풍경, 사물을 촬영하며 삶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그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시골 산간에 마땅한 병원이 없었다”며 “부모님께서 애타는 마음에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가거나 굿을 하시기까지 했지만 그걸로 병이 나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 이씨. 그는 어린 시절 또래 아이들의 놀림과 어른들의 동정, 연민이 불편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사람을 만나는 것과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됐다.

이씨는 생각했다. 환자가 의사를 만나지 못하면 병을 고칠 수 없고, 씨앗도 흙을 만나지 못하면 싹을 틔울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세상 속으로 다시 발걸음을 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못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17살에 상경했지만 먹고 살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겨우 지인을 통해 목공예 기술을 배우게 된 이씨는 3~4년간 연탄냄새가 나는 추운 골방에서 힘겹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도 그는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었다. 마땅히 사진에 대해 배운 적은 없지만, 느낌 가는대로 사진을 찍고 느끼고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썼다.

“많은 사람과 사물을 카메라에 담았죠. 이것이 예뻐서 사진에 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제 느낌을 따라갔어요. 특히 저도 장애인이지만 저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만나면 거기서 많은 교훈과 위로, 감사함을 얻곤 했습니다. 비록 장애로 인해 가고 싶은 곳, 사진에 담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는 힘겨움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새로운 희망을 가져나갔죠.”

그렇게 이씨는 일생동안 찍어온 사진과 글들을 엮어 최근 ‘만남’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책 속에는 그의 흔적과 삶이 모두 녹아있다.

현재 이씨는 사진과 함께 캘리그래피, 인두화를 배우고 있다. 최근 행궁동 인두화전시에도 참여하는 등 그는 적극적인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카메라를 들 힘이 없어 좋은 풍경을 보고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노인들을 보면, 아직까지 팔힘이 좋아 카메라를 갖고 다닐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라며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황호영기자/alex1754@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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