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런 핑계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1993년에 발표된 대중가요 <핑계>(김창환 작사/작곡, 김건모 노래)의 노랫말이다. 당시 <핑계>는 김건모의 독특한 음색과 그 시절에는 생소했던 경쾌한 레게리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백댄서들의 재미있는 춤 동작이 더해지며 노래의 흥미를 더 하여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내게 더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 왔던 것은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라는 노랫말이었다. 일상 속에서 종종 하던 그 말을, 리듬과 함께 노래로 만난다는 게 신선했고 그 때문인지 자주 그 말을 되 뇌이게 되었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입장 바꿔 생각 해 봐,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 바꿔 생각하라는 것은, 젊은 세대들의 표현으로 하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이중 잣대의 오류를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중 잣대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는 인지부조화 상태인 사춘기 청소년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것이 청소년만의 특징이라면 그래도 좋을 텐데, 문제는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의 인지부조화가 다수의 성인에게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족함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슴에 대못이 박힌 사람 앞에서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고 투정을 부린다거나, 혹은 그 아픔은 외면한 채 그 모습이 재밌다며 웃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분명 분노할 일이다.

세월호 사고가 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다섯 명의 미수습자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이상의 슬픔은 없다. 개인적으로, 부모님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세월호 사건보다 오래 되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오늘도 부모님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들 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던 가족이 졸지에 불귀객(不歸客)이 되었다. 차가운 바다 속에서 그렇게 가족과, 세상과 영영 이별을 해야 했을 상황을 생각하면 떠난 자도 남아있는 자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이다. 그런데 그 가족들을 두고, ‘그 만큼 받았으면 됐지’라며 정부와의 협상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짜증내듯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섬뜩했다. “얼마를 주면 당신 자녀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느냐?”고 되묻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어디 그 뿐인가? 젊은 여성의 성추행 사건 보도를 보면서 한낱 자신의 호기심꺼리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 때는 “피해자가 당신의 자녀라도 그렇게 행동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안색이 변하여, 도리어 나를 질책하듯 ‘어디 감히 나의 자녀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비난의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굳어 있는 내 얼굴이 부담스러웠는지 대충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를 떠났다. 어처구니없고, 화도 나고, 무엇보다 같은 여성으로 내가 성희롱을 당한 것 같아서 불쾌하였다.

우리 속담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에 대한 어린 시절의 해석법은 법은 올바르고 정당하지만 어려워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법적이고 온당하지 못한 주먹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법과 주먹의 옳고 그름의 이분법은 매우 뚜렷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일을 겪을 때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물론 법의 정당성과 주먹의 푹력성을 부정하거나 전도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배려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폭력자들, 혹은 온갖 비리를 다 저질러 놓고도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 일명 ‘법꾸라지’ 들을 보면 비록 옳지 못한 주먹이지만 가끔은 법의 보완재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다시 돌아가서, 입장 바꿔 생각한다는 것. 즉 타인의 입장을 생각한다는 것. 이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과 마주하는 일일 수도 있고, 자신의 과거, 또는 미래와 마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생기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나, 또는 내 가족에게도 생길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일은 결국 나를, 내 주변을 사랑하는 일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김상진 한양대 교수, 한국시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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