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가 이세돌 기사와의 바둑 대결을 통해 딥러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 시의적절(?)하게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던져지고 선거 국면이 시작되면서 냄비는 다시 끓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처럼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의 용어가 언론과 공문서를 도배하고 있다. 그래서 좀더 이것저것 조사해본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넘어선 경제와 사회구조 변화를 운위한다. 제레미 리프킨 류의 미래학자들이 일찌감치 갈파했던 공유경제나 수소경제, 자율주행차와 로봇이 보편화된 사회에서의 인권과 노동 개념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미래학자들의 전문적인 식견이 반드시 우리나라와 우리가 사는 지역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흐름을 짚어준다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공부해둘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실제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모델이나 총론도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지난 우리의 고도 경제성장의 결과물로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국민소득의 비약적 증가나 외국에서 더욱 자부심을 생기게 만드는 삼성과 LG와 같은 세계적 브랜드일까? 돈은 하루아침에 날아갈 수 있고 삼성이나 LG도 언제든 노키아나 소니가 될 수 있다. 그나마 우리가 또다시 절대빈곤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고급 교육을 대중적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머릿 속에 들어간 지식을 다시 지워낼 도리도 없을뿐더러 대중화된 지식 토대는 비옥한 토지처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부존자원도 없고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분단된 섬이나 다름없는 나라에 산다. 좁아터진 고립된 땅에 인구만 많으니 이들을 모두 밥만 축낼 부담으로만 생각했다면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 입에 풀칠할 여유도 없는데 아이들을 한 푼이라도 벌어오라고 노동 현장에 내몰지 않고 학교에 보내는 것이 쉬웠겠는가. 머릿 속에 든 지식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꿨고 우리의 발전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 우리에게 구시대로의 퇴행을 강요하기는 어렵다. 4차 산업혁명으로 떠들썩한 지금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결국 사람이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만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약속해준다. 보이는 당장의 이익보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정답임에는 변함이 없다.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고, 우리보다는 우리의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만 희망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지자체의 역할과 임무를 찾아야 한다.

과거 절대 빈곤으로부터 탈출했던 성장기와 앞으로 살아갈 수십 년을 비교할 때 차이점이 있다면 토건이나 중후장대 산업이 아니라 과학기술에 깊이를 더해야 하고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의 과학기술이 오픈 소스가 되고 그를 바탕으로 일반 젊은이가 창의적 1인 기업이 되도록 유도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는가? 정답! 지역사회 중심의 과학기술 문화다. 이를 정착시키는 것이야말로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근원적인 해법이다. 다시 한번 지방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경기도는 세계를 다 둘러봐도 독특한 곳이다. 인구로 보나 면적으로 보나 지자체라기 보다는 유럽의 강소국들과 비견할만 하다. 경기도가 가지고 있는 기반 요건을 보면 더욱 놀랍다. 기흥의 삼성반도체와 파주의 LG디스플레이는 기술이든 매출이든 세계 최고다. 경기도에는 현대자동차 기지가 있고, 판교의 정보기술 클러스터와 광교의 바이오나노 기술의 잠재력은 전세계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막강하다. 무엇보다 변화의 최대 변수인 젊은이들이 밀집되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재앙이 될지 도약의 기회가 될지를 결정할 관건은 개별 기술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융합 경쟁력에 있다는 점을 상기하라. 경기도는 국내 어느 지자체도 가지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가지기 어려운 자원들을 모두 이미 갖추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경기도만큼 융합과학이 꽃피기 좋은 여건을 보유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도가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서 낙오할 것이다.


정택동 서울대 교수, 융기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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