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석실마을 주변 산자락에는 신안동김씨 조상 묘가 즐비하다. 그중에서 김번(金?, 1479~1544) 묘는 조선8대명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 후손들 중에 왕비 3명, 정승 15명, 판서 35명, 대제학 6명, 청백리 3명, 120여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으니 8대명당이란 말이 나올 만 하다. 이들은 조선 후기 외척으로 왕권보다 더 강한 세도정치를 하였다. 여기서 조선8대명당이란 8곳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단지 대단히 좋은 자리를 강조하여 부르는 말이다.

유명한 명당이 그러하듯 김번 묘에도 전설이 있다. 이곳은 본래 김번의 처가인 남양홍씨들의 땅이었다. 김번의 백부인 학조대사가 양주 회암사에 머물고 있을 때 이곳을 지나다가 이 자리를 발견하였다. 자신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기 때문에 가문의 번영을 위해 조카에게 자리를 알려주었다. 김번의 부인은 친정집을 설득하여 후에 자신들의 묘 자리로 쓰는 것을 허락 받았다. 그런데 얼마 후 남양홍씨 집안에서 이곳이 명당임을 알게 되었다. 김번이 사망하여 묘를 쓰려고 하자 홍씨 집안에서는 문중 청년들을 동원하여 밤새 물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물이 나는 자리이니 다른 땅을 알아보라고 하였다. 하지만 홍씨 부인은 양보하지 않았다. 남편을 묻고 6년 후 본인도 함께 묻혔다.

묘를 쓰고 발복이 시작되었다. 김번은 생전에 1남(김생해)1녀와 대효·원효·극효 등 3명의 손자가 있었다. 이중 극효가 당시 실력자인 동래정씨 정유길의 사위가 되었다. 정유길에게는 사위로 광해군의 장인인 유자신도 있었다. 그러므로 김극효는 유자신과 동서지간이며 광해군의 처이모부가 된다. 이로써 안동김씨들은 서서히 권력의 터를 다지게 된다. 김극효에게는 김상용(우의정)·김상관(장단부사)·김상건(광릉참봉)·김상헌(좌의정)·김상복(경주부윤) 5형제가 있었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왕족들을 수행하여 강화로 피난하였다가 성이 함락되자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한 인물이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때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척화파였다. 이후 청에 끌려가 6년 동안 억류되었다.

김상용은 김광형(좌승지)·김광환(돈령부도정)·김광현(이조참판), 김상관은 김광찬(동지중추부사 증영의정)·김광혁(동부승지 증영의정) 등의 아들을 두었다. 김상헌은 아들이 없어 김광찬을 양자로 받아들었다. 김광찬의 아들로 김수증(공조참판)·김수흥(영의정)·김수항(영의정)이 있다. 김수항의 아들로는 김창집(영의정)·김창협(예조판서)·김창흡(이조판서)·김창업 등이 있다. 김창집의 4대손이 김조순으로 순조의 장인이 된다. 그는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이들은 안동김씨 중에서도 장동김씨라고 부른다. 청음 김상헌이 지금의 청와대 아래 장동에 살았기 때문이다.

이곳의 태조산은 남양주시 화도읍에 있는 천마산(天摩山, 810.2m)이다. 하늘에 닿는다는 뜻으로 산이 높고 험준하다. 여기서 동쪽으로 용맥 하나가 내려와 호평동과 마석 경계의 마치고개에서 크게 과협(過峽)한다. 과협이란 산과 산을 연결하는 고개로 사람의 허리처럼 잘록해야 좋다. 역도 선수들이 힘을 모으기 위해서 벨트로 허리를 꽉 묶는 거와 같은 이치다. 산은 과협을 통해 험한 기운이 비교적 순한 기운으로 바뀐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끝에 이르러서는 순하고 깨끗한 산으로 변하는 것이다. 마치고개에서 과협한 용맥은 위로 올라 백봉산(587.2m)을 만들고, 다시 아르데미고개에서 과협 한 다음 수리봉(485.5m)을 만든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뻗은 용맥은 동명이산의 수리봉(358m)과 273m·164m의 봉우리로 내려와 안동김씨 묘역의 주산을 만드는데 높이가 86m에 불과하다. 이는 태조산의 험한 기운이 순한 생기로 변했음을 뜻한다.

주산은 귀인봉으로 중심맥은 짧지만 기세있게 변화하며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잘록하게 과협한 후 봉우리를 향해 올라간다. 김번 묘는 여기서 횡으로 맥 하나를 뻗어 혈을 맺는다. 이를 횡룡입수라고 한다. 입수룡과 혈장의 모양은 가운데가 잘록하게 들어간 호리병처럼 생겼다. 이 때문에 혈명이 호리병에 물을 담는다는 뜻의 옥호저수형(玉壺貯水形)이다. 상하의 볼록한 부분에 기가 모여 있다. 입수룡 뒤로는 백봉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줄기가 들판을 적시고 있다. 들판 건너편에는 병마개처럼 생긴 낙산도 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물줄기가 바뀌고 들판의 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동김씨의 세도도 힘을 잃게 되었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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