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5일(현지시간) 독일에 있는 윤이상의 묘를 방문했다. 그가 외로이 이국 땅에서 죽은 지 22년 만이다. 김 여사는 그의 고향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으며 100년 만에 그를 추모했다.

‘동양의 사상과 음악기법을 서양 음악어법과 결합해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 유럽에서 윤이상 작곡가를 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정작 조국에서는 ‘동백리 사건’으로 간첩에 몰려 끝내 고국을 밟지 못하고 독일에서 숨을 거둔 비운의 작곡가였다.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진행됐던 경기도립극단의 연극 ‘윤이상 : 상처입은 용’은 파란만장하면서도 고뇌에 찼던 그의 인생사를 그려낸 연극이다.

극은 윤이상이 독일의 작가 루이제 린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일생을 들려주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무대에서 그의 생은 수많은 윤이상들이 표현한다. 통영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음악과 처음으로 만났던 7세의 윤이상과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초짜 음악가 윤이상, 일제 강점기 전쟁을 맞이해 고뇌하는 윤이상, 아내를 처음으로 만나던 35세의 윤이상, 북한에 사신도를 보러 갔다가 중앙정보부에게 잡혀 모진 수모를 겪던 47세의 윤이상 등이 그들이다.

극 중에서 윤이상은 자신만 남겨두고 변화해가는 세상에 괴리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는 순수하게 음악을 하며 세상을 음악으로 바라보고, 치유하고 싶지만 분단의 현실 앞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회색분자, 혹은 친북 간첩에 불과하다. 그런 그의 생에는 항상 ‘첼로’가 따라다녔다. 첼로는 대부분의 윤이상들을 따라다니며 그의 희망과 슬픔은 모두 대변했다.

특히 극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수시로 등장했던 등불이었다. 그에게 그리움과 고통을 주던 모든 윤이상과 주변 인물들은 등불을 하나씩 들고 다니며 그를 비춘다. 이는 그 끝이 어땠을지 몰라도 모두가 그의 삶을 찬란하게 비추던 그의 조각들이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 하다.

“태몽에 용이 나오면 특별하거나 위대한 사람이 나온다 하던데, 당신은 어땠어요?”라는 린저의 질문에, “저를 낳을 때도 어머니께서 용 꿈을 꾸셨대요. 근데 그 용이 상처를 입어서 날아오르질 못하고 산과 구름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고 하더군요”라고쓸쓸히 말하는 그를 통해 상처입은 용 윤이상의 생애가 절절하게 드러났다.

또한 마지막에 윤이상의 실제 육성이 담긴 토로와 첼로 연주 영상이 오버랩되며, ‘누가 내 얘길 궁금해나 할까요?’라고 쓸쓸히 독백하는 모습은 한 인간의 아픔을 넘어 우리 역사의 아픔을 통째로 들춰냈다.

이번 공연으로 도립극단은 두 번째 근현대 인물 시리즈를 마쳤다. 잊혀져 가는 역사를 비추는 이들의 한 걸음은 한 걸음이 기대된다.

황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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