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상 정상에서 바라본 조강과 북한 땅.
한강하구는 6.25전쟁과 남북 분단 전까지 조강(祖江)이라 불렸다. 한반도 동서의 큰 물줄기 한강은 물론, 유량이 만만치 않은 임진강과 예성강이 내려와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곡식을 실은 조운선이든, 침략을 위한 이양선이든 서울로 가기 위해선 이곳을 지나야만 했다. 유사 이전부터 조강의 물길과 그 주변의 너른 땅을 차지하기 위한 쟁투가 이어졌고, 왕은 이 물길을 건너거나 따라서 신성한 행차를 했다. 그렇게 수 천, 수 만 년 동안 바다와 내륙을 이어주고 있는 곳이 바로 조강이다.

그러나 한강은 1950년 한국전쟁 뒤 남북 간 군사대치 속에서 배의 왕래가 끊겼다.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경관조성과 유지용수 확보를 이유로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의 수중보에 가로 막히면서 30여 년 간 물길이 끊겼다. 우리민족의 흥망성쇠와 애환의 역사를 품은 한강하구. 그 한강하구와 서해의 품에 안겨 있는 김포시에서 우리 한민족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노력들이 또 다시 모아지고 있다.



북에서 내려온 소…한강하구의 재발견

1996년 7월 김포시 한강하구 유도(留島, 머무르섬)에서 소 한 마리가 발견됐다. 홍수로 표류하다 섬에 겨우 올라선 북한의 황소였다. 이듬해 1월 해병대 제2사단 장병 24명이 고무보트로 진입해 구출 후 ‘평화의 소’라 이름을 붙였다. 평화의 소는 이후 1998년 1월 제주도 농민이 기증한 암소 ‘통일염원의 소’와 짝을 이뤄 부부가 되었다. 이들의 2세인 ‘평화통일의 소’는 2000년 어미의 고향인 제주 우도에 정착해 새끼 40여 마리를 낳았다. 평화의 소는 2006년 자연사했고 유골은 김포시 통진읍 두레문화센터에 납골 형태로 보존되었다. 평화의 소 구출작전은 팽팽하던 남북대치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한강하구를 통한 긴장완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염소·준설선·거북선…다시 열린 한강

평화의 소 구출 이후 1999년 2월에도 한강하구 중립수역 납섬에 유입된 염소 10마리를 해병대 제2사단에서 회수했다. 연이어 그해 8월에는 집중호우로 파주 파평면 두포리 임진강 일대에서 한강하구 중립지역인 북측 관산포 일대로 표착한 준설선을 최초의 표류 지점으로 예인하기도 했다. 이때 정전협정 상 참모장교급회의와 제10차 장성급회의, 비서장급회의를 거쳤다.

또한 2005년 11월 경남 통영시와 서울시가 한강에 정박, 전시 중이던 거북선을 한강하구 중립지역을 경유해 한산대첩 전적지 해상으로 이동시켰다. 수로조사선 2척과 조사선원, 군정위와 해병대원 등 10여명이 투입되어 수로 조사를 실시했고, 이에 앞서 수로조사 및 거북선 이동 일정과 관련한 대북통지문을 발송했다. 긴장 속에 닫혀 있는 줄로만 알았던 한강하구가 사실은 남북 간의 접촉 창구이기도 했다.



선박항행·생태조사, 북핵 도발에 멈칫

DMZ(비무장지대)는 남북한의 무력 충돌 압력을 낮추기 위해 양측에 설정한 지역이다. 비무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북의 대치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포는 북한과 인접하면서도 155마일 휴전선 중 유일하게 DMZ가 없다. 한강하구가 1953년 정전협정에서 ‘쌍방 민용 선박의 항행에 개방’하는 중립지역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착안한 김포시는 한강하구의 항행과 물길·생태·환경 조사 사업을 준비하게 된다. 지정학적 여건을 바탕으로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선도 지방정부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향후 새 정부가 진전된 대북정책을 추진할 때 연계 활용될 수 있도록 대응한다는 복안이었다.

선박 항행과 조사의 디데이(D-Day)는 2016년 3월이었다. 최종 일정은 조수와 기상 상황, 국방부 협의 일정을 고려해 확정하기로 했다. 항행구간은 전류리~시암리~마근포리~조강리~용강리 왕복 45km였다. 김포시는 해병대와 국방부, 통일부, 군사정전위를 방문해 협의했다. 2016년 3월에는 유영록 시장이 한강하구에 대한 물길, 생태 등 여건을 조사할 수 있도록 정전협정 상 보장된 항행 추진 협조를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현재의 남북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해당 지역의 출입은 남북관계가 호의적으로 진전 시 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바로 앞서 터진 북한의 핵실험이 원인이었다. 이후 김포시의 한강하구 항행과 조사 사업은 잠정 중단되었다.



▲ 유영록 김포시장이 애기봉에서 조강 너머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다.

멈출 수 없는 노력들…평화통일학술제

그럼에도 김포시는 710만 재외동포와 함께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는 사업을 추진했다. 2016년 11월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함께 김포아트홀에서 개최한 평화통일학술제와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져 사는 사람들) 포럼이었다.

평화통일학술제에서는 한강하구에 있는 김포시가 앞장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갈 방법을 찾았다. 이틀 동안 열린 한민족 디아스포라 포럼은 지방정부 중 김포시가 처음으로 여는 재외동포 관련 행사였다. 710만 재외 한인동포들을 보듬고 이들과 함께 남북화해의 길을 열어가는 논의의 장이었다. 평화통일학술제에서는 ▶김포시와 함께 평화도시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고양, 파주시의 평화교육 사례 ▶평화통일을 위한 지역생활권의 미래 비전 ▶한강하구 공동조사를 통한 남북협력 증진을 다뤘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포럼에서는 ‘조강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임채완 전남대 명예교수가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조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접하고 있는 김포를 디아스포라 문제를 해결할 적임지로 꼽기도 했다. 행사와 함께 열린 ‘로저 셰퍼드 백두대간 사진전’과 영화 ‘조강 조강포 사람들’ 상영도 큰 호응을 얻었다.



새 정부 남북 교류·협력 방침 ‘청신호’

김포시는 지난 2015년 5월 평화문화도시 기본조례를 제정해 추진 근거를 마련하고, 그해 8월 평화문화도시 선포에 이어 10월 ‘평화’를 주제로 제10회 아시아국제청소년영화제를 개최했다. 지난해 4월에는 시정구호를 ‘지속가능한 창조도시 김포’에서 ‘대한민국 평화문화 1번지 김포’로 바꾸고 그 의지를 명확히 했다. 1번지는 ‘평화의 소’가 구출된 ‘유도’의 주소가 보구곶리 산 1번지이자 애기봉이 조강리 1번지인 것에 착안했다.

평화학교 개최와 함께 음악회와 전시, 소녀상 건립 등 평화문화주간을 운영하고, 올해 5월에는 제주포럼에 참가해 ‘새 정부에서 한강하구 중립지역 평화적 활용방안’ 세션을 열고 남북간 평화적 여건 조성 공론화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김포 최초로 평화를 주제로 가족공감 캠프를 여는 한편 한강하구 평화문화특구 지정 용역을 발주했으며 제2회 한민족 디아스포라 포럼 개최를 앞두고 있다.

또한 273억원을 투입하는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조성사업을 연내 착공하고, 유도를‘평화의 섬’으로 지정해 남북 소통의 창구로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신곡 수중보 철거 등 한강 물길 복원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와 함께 새 정부의 남북 간 교류와 협력 방침도 나오면서 김포시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유영록 김포시장은 “접경지역 지방정부별로 통일수도, 통일경제 등 한반도 재결합을 준비하는 노력들이 계속되어 왔다. 매우 바람직한 노력들이고 서로서로 북돋을 일”이라면서 “155마일 휴전선 중 DMZ가 없는 유일한 지역, 남북공동 생태조사 등 새 정부에서 즉각적인 협력 사업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곳이 바로 김포다.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 조성과 함께 우리 시민들의 윤택한 삶을 보장하는 문화적 역량을 높이는 데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조충민기자/ccm0808@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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