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 교육이 5년마다 춤을 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이 학교 울타리 안에 간섭을 하면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우왕좌왕한다. 교육 욕망이 강한 대한민국에서 교육공약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수 대 소수. 정치인들은 보다 많은 유권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다수를 위한 공약을 내놓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전체 학생수의 2%정도에 불과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특권층으로 내몰리며 비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교육이슈가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외국어고등학교(외고) 폐지다. 사교육과 불평등 서열화 교육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갑작스럽게 대선이 이루어지고 인수위도 없이 정권이 출범하면서 자사고, 외고 폐지 이슈는 더욱 가시화됐다. 조희연 서울교육감도 이재정 경기교육감도 자사고, 외고 폐지를 공언하고 나섰다. 거기다 경기도교육감 시절 혁신학교, 무상급식, 학생인권 등 공교육 개혁을 주도하는 정책을 펼쳤던 김상곤 전 교육감이 교육부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교육계는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돌고 있다.

교육 개혁을 통해 무한 경쟁교육을 공존과 협력의 교육으로 전환하고 양극화와 기회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수단으로서 자사고, 외고를 없어져야 할 특권 교육의 폐해로만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사고,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면 고교서열화가 해소되고 수평적 다양화가 가능하리라는 주장은 성급하다. 자사고, 외고를 폐지한다고 해서 사교육 유발문제와 공교육 붕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반고 내에서 내신 사교육이 있을 테고 또 다른 교육특구도 만들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입시제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교육 욕망이 큰 대한민국에서는 백약이 무효하다.

교육정책의 잦은 변경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간다. 자사고, 외고가 설립 목적에 반해 지나치게 입시 경쟁으로 변질된 측면은 수정, 보완하는 게 맞다. 부작용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으니 소수의 학교를 없애 버린다는 것은 보수-진보 집권에 따른 전 정부 색깔지우기로 비춰진다. 이념과 진영논리가 투영돼 2%의 다양성조차 인정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우리사회의 ‘집단적 르상티망’이다.

자사고, 외고 폐지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공교육을 담당하는 일반고등학교를 어떻게 살릴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황폐한 일반고등학교를 살리는 방안에 대한 고민보다 자사고, 외고 폐지 이슈만 부각되고 있다. 기존에 있는 제도를 없애고 또 새로운 형태의 혼란을 만들다보면 5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교육의 다양성 속에서 일반고를 어떻게 하면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하는 학교로 만들지를 고민하는 것이 지혜롭다.

다양한 선택권을 존중하고 교육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 강제로 선택의 자유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선택의 자율성은 교육소비자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김상곤 교육부장관의 세 딸은 강남 특구 여고,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두 아들은 외고를 졸업한 것도 선택의 자율성에 따른 교육소비자로서의 선택이라고 본다면 ‘내로남불’의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교육개혁가 김상곤 교육부장관과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자사고와 외고를 특혜와 특권을 주는 소수학교로 칭한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불러오고 사교육으로 희생 당하는 학생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일반고등학교의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을 그냥 둘 수 없어서 폐지가 답이라고 주장한다.

특정학교를 못가는 다수의 학부모와 학생이 훨씬 많은 상황에서 여론을 가지고 교육정책을 수립하거나 실행해서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의 교육 백년대계를 실현하기 어렵다. 교육문제가 선거를 의식한 주장이나 외침으로 사용돼서도 안된다. 궁극적으로 교육풍토와 환경을 바꿔 자사고, 외고가 필요 없는 교육현장을 만들어 달라는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주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육은 정치논리를 떠나야 한다.

박현정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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