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국강상이란 위치에 있는 왕의 무덤으로 땅을 널리 개척하고 나라를 평안하게 한 호태왕을 기리는 비석”을 말하는데 우리는 ‘광개토왕비’로 알고 있다. 아들인 장수왕이 건립하였는데 호칭 외우느라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 것 같다. 1,600년이 지난 오늘에도 호칭스트레스는 여전하다.

셰익스피어는 “이름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장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져도 똑같이 향기로울 텐데!” 라고 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라고 부르지 못해 호칭 없이 용건을 말하거나 ‘저기요’ ‘여기요’를 남발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닌데 차라리 일본처럼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이라 할 수도 없고 아무튼 난감할 때가 많다.

대통령만 해도 ‘각하’부터 ‘대통령님’까지 왔는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을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관들이 어떻게 호칭하는지 궁금하다. 아마 ‘대통령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호칭 없이 직접 보고하지 않을까.

과거 정부에서 구두닦이, 때밀이, 청소부등을 미화원, 욕조원, 환경 미화원으로 순화해서 부르기로 했는데 환경 미화원만 살아남았다. 노인이라 부르면 왠지 불경스러워 어르신이라 하는데 독거노인이란 말도 독거어르신이라고 바꿔야 하지 않나.

아줌마나 아저씨는 시비걸기 직전의 호칭이 되었고 식당 종업원은 전부 이모 아니면 언니, ‘여기요’로 바뀌었다. 손님은 다 사라지고 ‘고객님’만 남았다.

주요섭의 ‘미운 간호부’란 수필이 있다. 지금 간호부님이라고 불렀다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간호원을 거쳐 간호사님으로 통일 되었다. 삼성전자에서는 최근 직원 간 호칭을 ‘님’자를 붙이거나 업무 성격에 따라 ‘~프로’라고 사용한다는데 귀추가 주목 된다.

경기도청에서는 6급 주사를 ‘차관’이라고 부른다. 차석의 높임말인지 차기사무관의 약자인지는 모르나 남들이 사용하니 그냥 그렇게 불렀다. 중앙부처의 차관과 호칭이 동일하니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내 친구는 남자 호칭은 무조건 ‘선생님’ 또는 ‘사장님’이고 여자 호칭은 ‘사모님’이다. 전혀 부작용이 없고 부드러운 대인관계의 달인이 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안창호 씨를 존경 한다’고 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씨’자를 붙이는 통에 구설에 올랐다. 사실 MB세대는 뒤에 ‘씨’자를 붙이는 것이 결례가 되지 않았던 세대이다.

우리는 호칭에 관해 무척 관대하다 못해 과장하기를 좋아한다. 한강다리 전부를 ‘대교’라고 부른다. 광진교도 언제부턴가 광진대교가 되었다. 요즘은 ‘호칭 인플레’를 넘어 ‘등급 인플레’로 이어진다.

영화도 ‘개봉’이 아니라 ‘대개봉’, VIP도 모자라 VVIP, 소고기도 A을 훨씬 넘어 A++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연륜이 오래된 기자를 ‘대(大)기자’라고 부르는데 대기하는 사람으로 들린다. 요즘은 ‘전문기자’도 보이던데 나머지는 다 비(非) 전문기자인가?

지금은 그다지 부르지 않는 ‘장애우’란 호칭이 있었다. 장애인을 존중하는 의미인 듯 한 데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장애인이라고 부르고 그 분들을 배려하는 게 나을 성 싶었다.

석좌교수로 있지만 늘 호칭이 황송해서 좌불안석이다. 학문적 업적이 탁월한 학자라야 그런 호칭이 적절할 텐데 ... 교수도 외부에서 출강하는 분들은 초빙, 객원, 겸임, 대우, 특임교수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키높이 구두를 신는다고 신장이 늘지 않듯이 과다 호칭이 사람의 내면을 고양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분위기에 합당한 적절한 호칭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유행가에 나오는 ‘당신’은 사랑을 표현하는 대명사지만 차량접촉사고에서 상대방을 의미하는 ‘당신’은 욕으로 가기 직전의 심각한 호칭이다.

호칭은 한번 올라가면 내려가기 힘들다. 호칭이 올라가니 존대어도 방향을 잃었다. 얼마 전 병원에서 간호사가 ‘주사 맞으실게요“ 라고 해 당황한 적이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심보다는 표현의 과잉을 통해 해결하려는 심리가 투사된 결과이다.

새로운 어휘가 사회공동체 구성원의 명시적, 암묵적 합의를 통해 자리 잡듯이 호칭 역시 억지로 되지 않는다. 뚜렷한 기준은 없으나 호칭도 국민 대다수가 부담 없이 수용하면 자연스럽게 정착되는 것 같다. 비하 운운하며 생경한 호칭을 강요한 들 그들만의 용어가 될 뿐이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석좌교수,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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