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더운 것은 당연하지만, 요즘의 여름은 좀 더 길어지고, 뜨거워졌다.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본격적인 더위는, 대다수의 학교가 방학하는 7월 25일 이후부터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당연히 더웠겠지만, 선풍기도 없던 교실에서 그냥 저냥 수업을 한 것을 보면 그래도 그 시절의 더위는 견딜 만했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한 달도 전부터 불볕더위가 시작 되서는 8월말, 혹은 9월 초까지도 이어지니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폭염에 시달려야 한다. 올해도 6월부터 시작된 더위가 요즘엔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문득,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시절을 생각하며, 옛 사람들의 여름나기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고 하여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첫째는 송단호시(松壇弧矢)라는 것으로, ‘솔밭에서 활쏘기’이다. 둘째는 괴음추천(槐陰?韆)으로,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라는 것이다. 셋째는 허각투호(虛閣投壺)로 ‘빈 누각에서 투호 놀이’를 하는 것이다. 넷째는 청점혁기(淸?奕棋)로 ‘깨끗한 대나무 자리에서 바둑 두기’이다. 다섯째는 서지상하(西池常夏: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여섯째는 동림청선(東林聽蟬: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일곱째는 우일사운(雨日射韻: 비 오는 날 시 짓기), 여덟째는 월야탁족(月夜濯足: 달밤에 개울에서 발 씻기) 등을 꼽았다.

다산 선생이 소개한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은 대부분 시원한 곳에서 심신을 단련하거나 취미 활동을 하며 더위를 잊는 정신적인 극복이다. 물론 ‘탁족’은 현실적으로 더위를 물리치는 적극적인 소서법이 될 수 있다. 탁족은 몇 해 전 『퍼블릭 아트』(2013년 7월호)에서 <옛 그림에서 배우는 열 가지 피서법>에도 등장하는 우리의 대표적 피서법이기도 하다. 『퍼블릭 아트』에서는 피서법을 담은 우리의 옛 그림으로 <관폭도 觀瀑圖>, <탁족도 濯足圖>, <주유도 舟遊圖>, <조어도 釣魚圖>와 <어초문답도 魚樵問答圖> 등을 소개하였는데, 더위를 피하는 데는 역시 물(水) 만한 것이 없나보다. 이와 함께 혼자 하는 여행, 독서, 낮잠, 홀로 있기 등을 담고 있는 그림을 소개했다. 이것들은 조용히 더위를 가라앉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초복, 중복, 말복의 삼복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은 정확하지 않지만(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에 삼복이 거론 되었으니, 적어도 그 이전이다). 삼복더위에는 누구라도 ‘보양식’을 떠 올린다. 조선시대에도 궁중의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나눠주어 얼음을 하사하기도 하고, 일반 평민들은 닭, 돼지고기 등을 고아먹으며 몸보신을 했다고 한다.

지금 시대의 여름나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본질적인 것은 과거와 지금이 다름이 없지만, 구체적인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듯하다. 예컨대 과거 부채의 자리를 선풍기와 에어컨이 대신한다. 과거에 탁족 정도로 더위를 잊었다면, 지금은 수영을 비롯한 다양한 여름 스포츠를 즐긴다. 시원한 산 속이나 계곡을 찾아 떠나던 여행도 범위가 넓어져 국내를 벗어나 좀 더 시원한 나라를 찾기도 한다. 여름 음식도 보양식과 함께 다양한 아이스 음료나 빙과류가 즐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은 한 여름 밤에 읽는 시 한 수, 책 한 권이 아닐 까 한다. 다음은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방법을 노래한 한 편의 시이다.

夜熱依然午熱同 (야열의연오열동) 밤중에도 더위는 여전히 한낮 같아

開門小立月明中 (개문소립월명중) 문 열고 달빛 속에 잠시 섰네.

竹深樹密蟲鳴處 (죽심수밀충명처) 대나무 우거진 숲에서는 벌레 소리에

時有微凉不是風 (시유미량불시풍) 때론 바람이 없어도 서늘함을 느끼네.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양만리(楊萬里, 1127~1206)의 <하야추량>(夏夜追凉: 여름밤의 서늘한 바람)이란 시이다. 무더운 열대야에, 시를 짓지는 않더라도 시원한 시 한 수 읊조리며 마음으로나마 시원한 여름을 보내길 바란다.

김상진 한양대 교수, 한국시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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