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와 목왕리의 긴 골짜기는 구정승골로 불린다. 이곳에 정승 아홉이 묻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서면사무소가 있는 용담리에서 부용리로 가다보면 영의정을 지낸 정창손(부용리 산37-1), 이준경(부용리 산35-1), 이덕형(목왕리 산82-1) 등의 묘지 안내판들이 보인다. 김사형·신효창의 묘는 골짜기 제일 안쪽 양서면 목왕리 산49에 있다. 묘는 산봉우리에 있기 때문에 목왕리 버스정류장이나 평산신씨 재실 신추당 앞에 주차를 해야 한다.

신추당에서 청계산을 바라보면 삼각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 아래에 횡으로 펼쳐진 산이 하나있다. 정상은 둥글둥글한데 그 아래는 여러 개의 골이 나있다. 이 모습이 얼레빗 또는 윗니치아처럼 생겼다하여 소치형(梳齒形)이라고 한다. 구성으로는 녹존성에 해당한다. 이러한 산세에서는 둥글게 생긴 작은 소원봉에서 혈을 찾으라고 했다. 마을안길로 들어서 안동김씨의 재실인 낙포재로 가다보면 둥글게 생긴 소원봉이 보인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소원봉에 오르면 두 개의 무덤이 있다. 위는 안동김씨 김사형(1333~1407)과 부인 죽산박씨, 아래는 평산신씨 신효창(?~1450)과 부인 안동김씨의 합장묘다.

김사형과 신효창은 장인과 사위 관계다. 이 자리는 풍수학제조를 지낼 만큼 풍수에 일가견이 있었던 신효창이 잡은 자리다. 그는 우리나라의 산천 근원을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좋은 묘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면, 어느 고을 어느 지점에 좋은 자리가 있으니 그곳에 가보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 그곳을 가보면 신효창이 말한 대로 똑같은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였기에 이런 골짜기, 이 높은 곳에 숨어있는 소치혈을 찾아 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사형은 풍수지리가 아닌 세계지리에 일가견이 있었던 인물이다. 좌정승으로 있을 때인 태종 2년(1402) 이회·이무와 함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그렸다. 중국과 조선을 중심으로 일본, 중동, 유럽, 아프리카까지 그린 세계지도다. 이 지도는 동양에서 최초로 그린 세계지도다. 그러나 그 원본은 현재 미국 워싱턴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본마저 일본에 있고 우리나라는 복사본만 서울대 규장각에 비치되어 있다. 보도에 의하면 1992년 미국에서 열린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지도전시회에 이 지도가 전시되었는데, 서양의 많은 지도학자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곳의 산세는 백두대간 오대산(1563m)에서부터 비롯된다. 강릉에서 양평 양수리까지 동서로 길게 이어지는 산맥을 일부에서는 한강기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산맥이 더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북쪽의 북한강과 남쪽의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합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오대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물은 내린천이 되어 인재에서 소양강과 합쳐지고 춘천에서 다시 북한강과 합류한다. 남쪽으로 갈라진 물은 오대천이 되어 정선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두강이 양수리에서 합쳐져 한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대산에서 남북으로 갈라져 헤어졌던 두 물이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두 물 사이에는 산맥이 있고, 합수지점에는 지기가 모인다. 구정승골에 혈이 많은 이유다.

이 지역의 태조산은 양평 용문산(1157m)이다. 기가 세고 험하다. 중조산은 유명산(864m)과 소구니산(798m)이고 소조산은 청계산(656m)이다, 청계산의 정상이 마을에서 보았던 삼각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다. 청계산의 중심맥이 아래로 내려와 소치형 봉우리를 만들었다. 여기서 여러 갈래로 산줄기들이 뻗어 가는데 그중 소원봉을 만드는 맥이 주룡이 된다. 나머지 맥들은 주룡을 보호하기 위한 보룡 역할을 한다. 주룡이 아래로 내려와 결인한 다음 다시 위로 솟구쳐 소원봉을 만들고 행룡을 멈추었다. 용이 멈추면 기가 모여 혈을 맺는다. 볼록한 봉우리 위에 있으니 돌혈이다. 주변 산이 높으면 혈도 높은 곳에 있다고 했는데 이곳이 그에 합당한 곳이다.

김사형과 신효창 묘 모두 결인속기법으로 기를 모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김사형은 안동김씨 익원공파 파시조가 되었다. 그 후손 중에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는데 백범 김구 선생도 그의 21세손이다. 신효창의 후손들은 현재 8만 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했다. 정국공신 평원군 신수린, 기묘명현 신광록, 백의정승 신계승, 해동명필 신효중 등이 있다. 오늘날 인물로는 국무총리를 역임한 신현확도 그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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