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정치학을 공부하는 단체의 선생님께서 경기도 연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도 경기도 연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어떤 말씀을 하실지 자못 궁금했다.



솔직히 필자는 경기도 연정에 대해 그다지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경필 도지사가 연정을 제안했을 당시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도 받았었고, 연정을 추진해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잡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란하게 연정을 시작하기는 했는데, 그래서 과연 경기도 정치가, 도민들의 삶이 달라진게 뭐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었다. 아마 선생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 않겠는가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평가는 필자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지금도 필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내용은 “경기도 의원들의 논의 수준이 연정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라는 평가였다. 이 대목에서 필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방자치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8대2’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권한의 차이가 ‘8대2’라는, 미약한 지방자치의 수준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고 지방정부 내에서도 의회 사람들이 ‘8대2’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미약한 지방자치 안에서조차, 의회의 권한이 2할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표현이다.



빈약하기만 한 지방의회의 권한과 위상은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간혹 이를 알리바이 삼아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도외시하는 의원들을 자주 본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의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면 “지방의회가 아무런 힘이 없는거 알지 않느냐.”라거나 혹은, 지방의회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지원 방안에 대해 말하면 “의원들 수준이 낮아서 그런거 해줘도 감당하지 못한다.”라며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한다. 어려운 현실적 여건이 의원들의 사기를 꺾고, 그래서 의원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감당하려 하지 않고, 그래서 다시 지방의회의 현실은 더욱 나빠질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러한 현실에 비춰 봤을 때, 경기도 연정은 분명 주목해볼 만한 점이 있다. 경기도 연정이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니만큼, 모든 것이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시행착오도 불가피하고 불협화음도 감내해야 한다. 연정의 범위와 책임의 주체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풀어가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난관 속에서도 연정이 의미를 갖는 것은, 경기도의회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경기도의회라고 해서 ‘2할의 현실’로부터 예외일 리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정을 통해 의회에 역할과 권한이 주어졌을 때, 의회는 그 역할을 과감하게 수행했고 이전보다 훨씬 수준높은 의정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적 제약이 모든 것을 다 결정 하는게 아니다. 당장 눈 앞에 가시적인 성과물이 별로 없을지라도, 시민들의 대표 기구인 의회가 경기도 정치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경기도 연정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독일의 위대한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그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방의회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현실을 탓하며 무기력하게 앉아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을 저버리는 것이 결코 올바른 일이라 할 수는 없다. ‘2할의 현실’이 답답하고 괴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인내하며 감당해가는 지방의회의 모습을 보고싶다.



그런 의미에서 수원에서도 ‘수원형 연정’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한다. 분명 쉽지는 않을 것이고 당장 눈에 띄는 결과를 기대하기도 어렵겠지만, 수원시의회의 논의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미국의 경제학자 앨버트 O. 허시먼 (Albert O. Hirschman, 1915~2012)이 말한대로 중요한 것은 ‘쟁점의 해결이 아니라 논쟁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의회의 발전을 고민하는 정치인과 정당이라면 깊이 고민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유병욱 수원경실련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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